오늘 보실 영화는, 파스칼 페랑 감독의 영화 <레이디 채털리>입니다.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로랜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외설과 예술에 대한 많은 논쟁을 낳았던 작품입니다.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입니다. 콘스탄스의 남편 클리포드는 전쟁에 참전해 하반신 불구가 되어 돌아왔고, 콘스탄스는 그런 남편을 돌보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콘스탄스의 삶은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커다란 저택과 하인, 교양 있는 남편이 있다고 하지만 남편을 돌보는 콘스탄스의 눈에서 활기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콘스탄스에게 작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어느날 남편의 심부름으로 사냥터지기 파킨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파킨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끌리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당쇠와 마님의 모습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단 파스칼 페랑 감독이 여성 감독이라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드실 겁니다.
파킨이 마음에 들었는지, 콘스탄스가 파킨을 찾아가는 발길이 잦아집니다. 그리고 파킨도 그런 콘스탄스가 싫은 것 같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갓 태어난 병아리를 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콘스탄스와, 그런 콘스탄스를 위로하던 파킨은 결국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우연처럼 시작하죠... 그런데 첫 사랑을 나누고 콘스탄스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고, 파킨도 이에 동의합니다. 솔직하죠? 둘의 관계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점점 깊어집니다.

어딘가 독특한 느낌의 여배우!

관습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불륜 영화입니다. 남편이 있는 콘스탄스가 남편의 병수발을 들다 남편의 하인과 눈이 맞은 셈이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에 불륜에 대한 긴장감은 없습니다. 이를테면, 콘스탄스가 파킨을 만나기 위해 숲길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콘스탄스가 집을 몰래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그리고 콘스탄스와 파킨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이들의 관계가 백일하에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나 이들이 불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륜이라는 코드를 피해 이 영화가 들어서는 곳은 몸과 애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영화는 클리포드와 그의 친구들 사이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클리포드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가했던 친구 중 한 사람이 전쟁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누군가 발목이 잘려 나갔는데,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죽더라는 것입니다. 단지 발목이 잘려나갔을 뿐인데,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며, 몸이 참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군요. 전 이 도입부를 보고 이 영화가 단순히 욕망에 대한 영화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마치 한 소녀와 소년이 호기심과 순수한 몸짓을 통해 애정에 도달하는 과정처럼 여겨졌습니다. 즉 영화는 이미 욕망의 실체를 경험하거나 직관하고 있는 주체가 그것을 억압하는 외부의 현실과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재로 여 주인공의 표정을 본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저의 생각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리고 콘스탄스와 파킨의 대화를 듣다보면, 서로의 몸에 대한 지극한 호기심을 가진 십대들의 이야기로 들리는 대목도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파킨 역할의 남자가 원래 소설의 이미지와는 달리 배가 약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지려고 하는 아저씨라는 설정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파킨 역의 아저씨는 절대 느끼하거나 음흉하지 않습니다. 그는 계급 관계 속에서 고용주라는, 일종의 어른을 모신 하인, 즉 아이의 위치가 될 뿐입니다. 파킨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성장은 클리포드를 향한 투쟁이 아닙니다. 콘스탄스가 작은 농장을 사주겠다고 파킨에게 제안할 때 드러나듯, 파킨이 바라보는 성장의 대상은 콘스탄스입니다. 종종 아이들은 학교나 어른의 가르침에 의해서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더욱 성장하는 법이지요.

몸과 애정에 대한 영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독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클리포드는 질투보다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고, 콘스탄스가 여행을 간 사이에 찾아왔다는 파킨의 옛 아내는 그저 편지에 잠깐 소개될 뿐입니다. 맬로 영화로 발전할 수 있는 코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즉 이 영화에서 사랑은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벗어나 있습니다. 맬로 영화의 코드를 벗어난 영화는 콘스탄스와 파킨, 단 둘의 관계를 자연에 빗댑니다. 즉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두 인간의 만남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정신이 아닌 몸에 의해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흐뭇하게 탐색하는 것입니다.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맨몸으로 숲속으로 뛰어드는 파킨스와 콘스탄스는 몸에 진흙을 묻히고, 그 진흙을 꽃과 풀로 닦아내고 자신들의 몸을 꽃으로 장식합니다. 말그대로 운우지락이지요. 언뜻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행위는, 몸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육체적인 사랑에서 시작해 대화로 발전합니다.

이 영화는 무척 끝날 것 같지 않은 순간에서 덜컥 끝이 나버립니다. 보통 영화들은 엔딩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기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애초에 그런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스토리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자막이나 편지나 나래이션으로 대체해버리는 영화의 앞선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는 둘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서로의 몸에 대한 애정의 발전을 따라 흐릅니다. 전 이것이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집필되었습니다. 전쟁이 드러내는 것은 사지가 절단된 인간의 육체입니다. 즉 전쟁이란 돌맹이처럼, 혹은 부품처럼 덧없이 스러져가는 몸에 대한 서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은 그 전쟁의 직후에 다시 몸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꿈꿉니다. 몸의 신비로움, 작은 열병을 앓는 몸, 촉감을 통해 드러나는 몸, 꽃과 함께 더욱 아름다워지는 몸. 몸이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어떤 것은 언제나 가혹한 정치의 장으로 확장될 여지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전쟁을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을 무력화하며 전쟁으로부터 떠나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참고로 영화에 남성의 성기가 나오므로 혹 놀라실 분들은 미리 놀랄 준비를 하고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