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전체의 진행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를 담는다. 사냥감을 조준하는 모스의 총은 빗나간다. 대신 들개 같은 동물이 총알을 맞고 피를 흘리며 평원 너머로 사라진다. 어쩌면 그 들개는 모스보다 먼저 모스가 조준했던 사냥감을 노리던 중에 모스가 잘못 쏜 총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텍사스의 평원엔 단지 모스와 들개와 사냥감, 그리고 평원뿐이었으니 말이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는 서로를 응시하는 사냥감과 사냥꾼, 빗나간 탄환 그리고 말없는 평원의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의 책임은 빗나간 탄환에 있다. 조준은 하였으나, 탄환은 조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날아간다. 피투성이 총격전의 현장에서 주운 돈을 지키려는 모스는 자신이 정확하게 추격자를 겨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조준은 정확했다. 추격자로부터 평생 도망 다니는 것보다 추격자를 없애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그는 자신이 있다. 그는 베트남전에 ‘두 차례’ 참가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프로 살인업자인 시거가 보기에 모스는 뻔한 결말을 지연시키고 있다. 모스가 할 수 있는 최고치는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들고 추격자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반면 시거는 추적의 달인이며 그의 총탄은 어디에서든 정확하게 모스를 겨눌 수 있다. 시거는 사신을 연상시키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아보이던 이들의 추격전은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 비록 모스가 죽어도 시거의 조준은 끝나지 않는다. 시거는 자신이 만든 원칙,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스의 아내까지 죽인다. 시거는 완벽한 킬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도 틈은 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완벽한 살인자로 만들었는가

이들의 장난 같은 참혹함 혹은 완전함에 선행하는 것은, (소)도시라는 장소가 안겨주는 특이함이다. 평원에서는 몸을 숨길 수가 없고 사냥감이나 사냥꾼은 서로를 노출한 채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소)도시에는 숨을 곳이 많다. 사냥감은 이 장소의 여러 건물과 차량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도망을 다닌다. 그러나 노련한 사냥꾼은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장소들의 침묵에 있다. 그들이 도착하는 장소들은 모두 여러 차례의 살인과 폭발, 총격에 대해 침묵을 유지한다. 모스와 시거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총격전을 벌이는 도로와 (소)도시에서 누구 하나 이 둘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심지어 이 둘에게 경계심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이들은 (소)도시라는 구조, 즉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맺어놓은 물질적이며 규범적인 관계를 무시한다. 그들이 노출된 순간, 그들은 몇 차례의 흥정-돈을 주든가 협박을 함으로써-을 통해 자신들을 숨길 수 있게 된다. 혹은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들에 의해 (소)도시는 독백의 공간이 아니라 방백의 공간임이 폭로된다. (소)도시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이들과 은밀한 거래를 주고받는다. 즉 모스와 시거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소)도시의 모든 것들과 방백을 나눈다. (소)도시는 몇 푼의 돈이 주어지면 눈앞에서 펼쳐졌던 모든 참혹에 눈을 감거나 협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소)도시에서 숨는 것은, (소)도시가 갖추고 있는 사법적 기능으로부터 숨는 것이 아니라 (소)도시를 이용해 상대방에게서 숨는 것이다. (소)도시의 현실은 평원보다 더욱 냉정하다. 평원은 말이 없을 뿐, 이들 살인자들과 은밀하게 속삭임을 나누는 짓 따위는 하지도 않는다. (소)도시의 영악함을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 영화의 말미에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시거의 모습에서 시거가 보여준 가공할 만한 폭력성을 압도하는 (소)도시성을 엿볼 수 있다. 시거는 자신을 벌거벗긴 (소)도시 앞에서, 마치 모스가 그랬던 것처럼 돈을 주고 흥정을 해야 한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걱정하는 노인의 표정

이러한 (소)도시성의 와중에, 유일하게 시거를 긴장시킨 이는 에디이다. 늙은 보안관 에디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는다. 다만 모스가 살해되고, 수사라인이 쳐진 모텔 앞에서 시거의 흔적을 발견하고 수사 라인을 넘어 진입을 시도한다. 수사라인은 수사 라인의 너머에 있는 사람과 수사 라인의 안쪽에 있는 사람 사이에 적당한 사법적 타협을 만들어낸다. 수사라인을 지키는 한 서로는 서로를 무시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방관하는 윤리에 스스로를 의탁하게 된다. 에디는 이런 타협을 넘어 수사라인의 안쪽으로 진입하고, 관객은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시거의 긴장한 얼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에디는 지혜롭고 온정이 있으나 너무 늙었다. 그는 모스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는 있으되, 그것을 실현시킬 힘이 없었다. 모스와 시거는 에디가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과 욕심을 가지고 움직였으며 그들을 둘러싼 (소)도시, 곧 그 속의 삶들은 이 둘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았다. 에디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의 활동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말이 없는 평원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하며 새로운 시대의 경찰은 아무 원한이 없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의 일이 아니면 둔감하게 여기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경찰이어야 한다.

영화는 지금의 시대에 대해 난해함을 고백했다. 우리는 이것을 미국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즉시, 미국은 현대의 우리가 지닌 문제들에 대한 누명을 뒤집어쓴다. 그저 기억하고 싶은 것, 모든 사건의 발단은, 한 차례 타이밍을 잃은 온정이다. 모스가 제 때에 총격전의 생존자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다면 모든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의 말처럼 촌스러운 결론이지만, 한 차례의 적절한 온정과 관심이야말로 난해한 시대에 대한 난해한 답변이 아닐까 한다. 노인만이 지혜로운 시대, 그러나 누구도 노인의 말을 듣지 않는 시대에 노인의 나라가 없다면, 그 누구를 위한 나라는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