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에선가, 아마도 <소나티네>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 첫 번째는 장난이었고, 두 번째는 진짜였다. 93년의 일이다. 늦은 여름, 조용한 해안에서 빈둥거리던 야쿠자 두목은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을 두고 사라져버렸다. 얄궂게도, 때때로 삶은 짊어지기에 무척 힘든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왜 태어났는지 모르니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르고 그러다보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다. 그 당시 다케시의 첫 번째 ‘한 방’은 영화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방’은 영화의 외부에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영화와 영화의 외부에 존재하는 층위의 질감에 대해 경험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3년 후, 다케시는 <키즈 리턴>을 내놓았다.

아마도 <키즈 리턴>은 <소나티네>의 후편일 거라고 생각한다. <키즈 리턴>의 청년들은 끝을 비관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시원스레 웃었다. 그러나 이 웃음은, 묘하게 <소나티네>에서 첫 번째 한 방을 날리던 다케시의 웃음과 연결된다. 같은 의미에서 <키즈리턴>의 마지막 장면은, 무언가 기괴한 구석이 있다. 다케시는 삶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그저 “너도 한 번 살아봐.”라며 웃어버릴 것 같은 사람인데, 이 영화의 끝은 모질게 착하다.

소나티네의 웃음

영화는 두 청년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리는 신지는, 우연히 고교 시절 함께 어울렸던 마사루를 만난다.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곤 예전처럼 함께 자전거에 올라탄다. 자전거가 달리면서 둘은 과거의 시절들로 돌아간다.
신지와 마사루는 수업을 빼먹고 애들 삥이나 뜯으며 돌아다니는 양아치들이다. 신지는 마사루의 친구이며 똘마니다. 그들의 주위에는 찻집에 죽치고 앉아 여종업원에게 소심한 애정공세를 펼치는 또래가 있다. 그리고 만담꾼이 되겠다며 언제나 연습중인 2인조가 있다. 이들은 이미 주어진 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나아질 것도 없고, 못나질 것도 없는 무정한 삶만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반복과 순환은 청춘을 대변하는 명사이며 동사이다. 그러나 그런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어느날 권투선수에게 얻어맞은 마사루는 자기도 권투를 배우겠다며 권투도장에 찾아간다. 신지도 따라간다. 둘은 권투를 배운다. 그리고 우연한 스파링에서 신지는 마사루를 이긴다.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두고 야쿠자가 되어버리고 신지는 재능을 인정받아 떠오르는 신예가 된다. 졸업 후, 찻집에서 여종업원을 꼬시던 순진남은 영업직원이 되었고, 만담 2인조는 노인 관객 두 세명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한다. 그럭저럭 오늘을 대충 수습하며 살아가는 인생들, 그러나 이들에게 찾아오는 미래는 그런 수습마저 힘겹게 만든다.

세상이란 참 헐거운 것 같으면서도 오밀조밀하다. 힘을 줘서 움직이면 툭 끊길 것 같기도 한데, 정작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 받아들여진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불행히도 내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하나의 세계가 뒤따라 태어나지는 않는다. 세계란 늘 나보다 앞서 있고, 나는 그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매달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알게 된다.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내가 사라진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나는 사라지기 위해 아등바등 이를 악문다. 이를 테면 신지와 마사루가 다니던 권투도장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작은 공간엔 이미 하나의 세계가 있다. 떠오르는 신예복서가 있고, 신지나 마사루 같은 풋내기도 있다. 나이를 먹고 타락한 무능한 복서도 있고, 어찌어찌 그 세계에서 살아남아 이들을 지도하며 승리를 위해 반칙을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알려주는 코치가 있다. 모두들 처음엔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야쿠자의 세계에 들어선 이는 보스가 되겠다며 가슴에 힘을 주고, 영업직원이 된 이는 까짓것 그만두고 택시를 몰아도 이보다는 낫겠다며 친구 따라 사표를 낸다. 잠시간의 격렬한 몸짓과 통증이 있은 후, 이들은 자연스레 이 세계들의 주변부에 함몰된다. 이들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엔, 이들은 특별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이렇게 살아간다. 우리는 흔히 주변부 사람들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주변부 사람이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언제나 링은 세상의 축소판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다케시의 의식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마사루의 웃음은 <소나티네>의 첫 번째 미소를 닮았다.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데,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웃고 있다. 농담같기도 하고 진담같기도 하다. 만약 이들의 삶이 영화의 바깥까지 연장된다면, 그들은 <소나티네>의 다케시처럼 두 번째 ‘한 방’을 날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케시가 세계를 비관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세계가 좋은 것이라고 거짓부렁을 늘어놓는 어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 편견으로 가득 찬 수다쟁이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할 말을 전해주고 있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고, 자신의 신분을 망각해서는 안 되고, 인내는 열정 못지 않게 중요하며, 자신의 길에 확신이 있다면 비록 시작이 힘들더라도 결코 그 길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다케시는 마사루와 신지의 결말을 정해두지 않았다. 이 모든 교훈을 속삭인 후, 이들을 다시 원래의 시작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니 영화를 보며 문득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어졌다. “고마워요,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