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 가져다 줄 행복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보면 특별히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권태를 호소하고, 습관처럼 싸우고, 의무적으로 화해를 하곤 한다. 연인 사이가 이렇다면 부부 사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싫은 모습도 보여주어야 하고, 또 싫고 지겨운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야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복잡한 기호와 신호들을 서로에게 보내며 살아간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권태감이란 그들의 삶과 관계가 만들어낸 지루함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서로의 기호를 읽어낼 수 없음, 혹은 그 신호를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음의 의미일 수도 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51년작 <밥 Repast>은 부부 사이라는 특별한 관계의 표층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이를 통해 그것의 심층에 이르는 영화이다.

미치요와 하쓰노스케는 오사카의 한 지역에 사는 부부다. 앞집엔 청년 실업가의 첩이 혼자 살고 있고, 옆집엔 자녀를 둘 둔 부부가 살고 있다. 신혼생활은 끝난 지 오래된 것 같지만 이들에겐 자녀가 없다. 미치요는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가정주부이며 또한 남편에게 헌신적이다. 하지만 하쓰노스케는 미치요에 비해 무심한 듯 무관심한 듯, 미치요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치요를 보면 밥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는 남자’ 같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권태라고 하면 권태, 익숙해짐이라고 하면 익숙해짐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하쓰노스케는 아침 일찍 신문을 보다 밥을 먹고 회사에 출근하고, 미치요는 아침 일찍 밥을 차리고 밥을 먹이고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돌본다. 미치요의 친구는 같이 사는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일상 속으로 이방인이 걸어들어온다. 하쓰노스케의 조카인 사도코가 가출을 빙자해 갑작스럽게 이들을 방문한다. 사도코는 젊다. 그리고 자유분방하다. 처음엔 손님이 반가운 미치요였지만 점점 사도코가 부담스러워진다. 사도코의 젊음, 사도코의 자유분방함을 지켜보는 미치요에게선 부담을 넘어선 불만의 감정들이 생겨난다. 하쓰노스케는 정작 자신에게 밥을 해주는 미치요에게는 잘 해주지 못하면서 사도코에게는 전에 없이 친절하다. 이것 또한 미치요에겐 불만이다.

영화는 미치요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 얘기를 뒤집으면 영화는 하쓰노스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미치요와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몇 마디의 대화와 미치요의 설명으로 드러난다. 영화가 미치요의 시선을 선택한 것은 무척 분명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미치요가 하쓰노스케에게 보내는 불만어린 눈빛, 자신의 생활에 대해 스스로 체념하는 표정과 몸짓들을 무척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미치요의 시선 속에서 젊은 사도코가 보여주는 자신감과 철없음은 사실 사도코 자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미치요가 사도코를 통해 발견하는 자신의 결핍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지금도 아름다운 미치요는, 어느 순간 자신의 남편과 사도코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도코가 집에 들어온 날들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치요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사도코를 돌려보내겠다는 핑계로 미치요는 돈을 빌려 도쿄로 떠나버린다.

누구나가 자신의 진짜 삶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익숙해진 생활은 그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랑 받지 못한다. 아주 자주 우리는 결핍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것이 과잉인지 결핍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닌 별거 생활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미치요의 마음 속에서는 하쓰노스케가 지워지고 있는 것 같다. 거센 태풍이 오사카를 강타했을 때에도 미치요는 하쓰노스케의 안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쓰노스케는 하쓰노스케 대로 주위의 여인들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이즈음에 이르러 궁금해진다.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내어줄 수 있는 답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의 정답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숱한 의문들을 묶혀 둔 채 시간은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치요는 도쿄의 거리에서 하쓰노스케를 만난다. 회사 일로 잠시 출장을 왔다는 하쓰노스케를 만난 순간, 미치요는 정답의 일부를 알게 된다. 미치요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녀는 생각만큼 하쓰노스케를 잘 알지 못했다. 분명 한 공간 속에서 하쓰노스케도 끊임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미치요에게 신호와 기호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미치요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하쓰노스케가 그랬듯이.

흔히 결혼 생활에서 정이 쌓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보냈던 신호와 기호들, 때로는 전달되고 때로는 수취인불명이 되어버린 마음들이 만들어낸 상처와 아물어감이 두텁게 쌓인다는 의미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흔히 어른들은 ‘결혼은 해도 고생, 안 해도 고생’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실망스럽게도 가정에서의 이분법적 남녀 성역할의 범주를 긍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찾는 미치요의 독백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것이 미치요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삶이라면 타인에 의해 재단당하고 공격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해본다. 세상의 어디쯤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