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복수극의 서사는 복수의 주체에게 끔찍한 악마성 혹은 절대적인 선을 부여합니다. 끔찍한 변을 당한 주체는 사회적 윤리를 벗어나 개인적인 처형을 감행할 수 있는 심판자의 자격을 얻게 되고, 복수는 강력해집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복수극의 관습은 곧 관객의 기대이기도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금자씨는 복수의 주체로 서기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백선생의 죄란 “유괴범이 유괴범의 딸을 유괴한 것”이기 때문이죠. 복수에 관한 한, “너나 잘 하세요.”라는 핀잔을 들어야 할 사람은 금자씨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관습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많은 관객들은 이런 측면에서 <친절한 금자씨>가 어딘가 부족한 복수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린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복수극의 관습적인 속도에서 학교 시퀀스로 기어를 변환하면서 이 영화가 가고 싶어하는 것은 완성도 높은 복수극이 아니라 복수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라고 여겨집니다. 복수를 사유한다는 것. 이것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욕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이고 코믹할 뿐입니다.

감옥에서 기도를 통해 '나'와 대면하던 금자씨는 결국은 '너'의 문제로 되돌아옵니다.

이 복수를 사유함에 있어 중심적인 대상은 아마도 ‘구원’의 문제 같습니다. 세상에는 ‘복수’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즉 공적인 처벌이 오히려 불합리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사적 처벌이라 할 수 있는 복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또한 실현 가능한 대안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근대 이후 감옥, 교회, 학교를 통해 처벌을 공적인 영역으로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금자씨의 사건에서 보여지듯, 공적인 시스템은 언제나 허술하고 그 허술함으로 피해자를 낳기 마련입니다. 금자씨도 이 허술한 시스템의 피해자인데요, 금자씨의 영특함은 이 시스템의 허술함을 복수에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금자씨는 감옥에서 복수를 준비했고 조력자를 모았으며, 감옥에선 종교가 그녀의 알리바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복수극의 대단원을 내리죠. 만약 영화가 여기에서 마감이 된다면, 이 영화는 그냥 공적인 시스템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영화로 끝날 텐데요, 영화는 조금 더 생각을 진행시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뭔가 복수해야 할만한 사정이 있어서 사람들이 복수를 했다고 치면,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의 문제가 남습니다. 억울한 사정이 있지만 사회가 이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 결국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독특한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즉 공적인 시스템이 처벌을 하는 장소에선 처벌의 주체가 이 피해를 본 당사자가 아닌 국가이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시원치 않은 복수일지라도 일단 당사자 손에 피를 묻히진 않죠. 그런데 사적인 복수를 한 사람은 비록 속마음이야 시원할지 모르지만 당사자 손에 피를 묻혔으니, 이젠 이 피를 닦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야 할텐데, 그게 가능하냐는 말이겠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는 금자씨 주위의 인물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금자씨의 조력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금자씨의 관찰자들입니다. 즉, 하나는 ‘죄 지은 자들’로 이루어진 조력자들(감옥에서의 동료들, 형사, 피해 아이들의 부모들)이고, 다른 하나는 “천사”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금자씨의 관찰자/감시자들(빵집소년과 제니)이죠. 조력자들은 금자씨의 복수가 지닌 필연성과 정당성을 변호하는 세계를 만들고, 관찰자들은 금자씨를 다시 이 세계로 귀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번째의 그룹, 즉 금자씨의 구원의 열쇠를 쥔 관찰자들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영화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 복수하려는 자의 역량보다는 용서하려는 자의 역량에서 복수-구원의 연속성을 짚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신의 영역에나 존재할 수 있는 ‘용서’를 인간의 영역으로 되돌려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올드보이>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신탁의 숙명을 통과하며 결국 구원의 불가능성으로 투항했다면, <친절한 금자씨>는 불완전한 인간인 금자씨에게 감옥-교회-교육이 주지 못했던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려 합니다. 그것이 영화가 선택한 길입니다. <올드보이>가 내러티브의 힘을 지니는 이유는 영화가 구원의 불가능성에 쉽게 타협했기 때문이고, <친절한 금자씨>가 내러티브의 늪에 빠진 것은 영화가 구원의 가능성에 끝까지 주목하기 때문이죠. 백선생은 폐교에 감금된 상태에서 자신의 연쇄살인을 발견한 금자씨에게 “그 아이들이 왜..”까지 말하고(즉 ‘그 아이들이 모두 죽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려다) 입막음을 당합니다. 금자씨에게 ‘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다만 “큰 죄를 지었으면 크게 작은 죄를 지었으면 작게 속죄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이 백선생의 공범자인 금자씨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자의식이며 스스로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함정입니다. 그러나 금자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왜’를 묻습니다. 복수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복수당할 일을 저질렀나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죠. 살해당한 아이들의 부모들 역시 ‘왜’를 묻고, 무엇보다 제니 역시 ‘왜’를 묻는다. ‘관대하지 않은 딸’ 제니가 쓴 편지를 읽기 위해 영한사전을 뒤적이는 금자씨가 사전에서 발견한 두 단어는 이유(reason)와 복수(revenge)입니다. 제니는 자신을 버려야했던 ‘이유’, 즉 ‘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합니다.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복수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입니다.

금자씨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인간적인 것, 즉 인간의 오류에 대한 이해입니다. 신의 섭리에서야 죄의 이유(reason)보다는 신의 의지(<올드보이>)가 중요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즉 금자씨의 말처럼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기에 이에 합당한 인간의 섭리가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 금자씨의 행적은 모두의 죄를 한 몸에 안고 대신 고통을 받은 예수의 행적을 정반대의 방향에서 모방한, 그래서 모두의 죄를 백선생에게 안기고 그에게 고통을 전가한, 일종의 신의 행적에 대한 거울쌍 이었습니다. 제니는 그런 금자씨를 인간의 세계로 데리고 옵니다. 이 부분에서 복수와 구원에 관한 영화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영화는 ‘죄와 용서’ 혹은 ‘선과 악’이 서로의 자연 발생적인 존재 조건이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간인 이상’ 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죄에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고 이에 충실하게 용서의 인과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누구나 가해자일 수 있다)은 ‘누구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용서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의지이다)이며, 그리고 ‘용서를 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용서를 받기 위한 몫은 전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이다)이기도 합니다. 금자씨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제니는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금자씨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도”, 원래 인간은 죄를 짓고 살아가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금자씨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금자씨에게 결여된 ‘인간’에 대한 이해, 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금자씨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주저하는 존재, 부정을 저지르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은 오히려 인간이 나의 죄와 잘못을 투사할 타자로 존재할 뿐이죠.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을 보충하기 위해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살아갑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어울림 속에서 죄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죄의 해결도 타인과의 어울림 속에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시작점은 공적인 제도보다 근본적인 부분들, 이를테면 소위 ‘사랑’일 수도 있고 ‘윤리’일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등을 돌리지 않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 세계는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인간다워집니다. 인간다운 것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