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볼 영화는 그렇게 유명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영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회로 (Pulse)"입니다.

많은 공포영화가 있습니다. 우물에서 머리 긴 여자가 기어나오기도 하고 전기톱을 가지고 사람을 고기덩어리로 만들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무서움' '공포'가 무엇일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를테면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되는 것'이 무서움일까. 혹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은 언제고 '사후복수'를 한다는 그 윤리가 무서운 것일까. 피와 뼈가 난자하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그 기분이 무서운 것일까.

어쨌든 무서움도 일종의 텍스트라고 생각한다면, 그 경향이 반복되고 답습하다보면 언젠가 내성이 생기게 되는데요, 저는 이 '회로'라는 영화를 보고, 이 영화 정말 무섭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무서움이 생리적인 무서움이 아니라 개념적인 무서움이라는 것이죠.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네이버 영화해설에서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대학생활로 바쁜 카와시마 료스케(川島亮介, 가토 하루히코 분)와 평범한 직장여성으로 살아가는 쿠도 미치(工藤ミチ, 아소 구미코 분).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들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치의 동료는 자살하고, 회사의 사장은 실종된다. 애인도 가족도 친구도 차례로 사라져버리는데. 한편 료스케가 시작한 인터넷의 화면에는, 접속도 안했는데 "유령을 만나고 싶습니까"라는 메세지가 뜨면서, 검은 자루를 뒤집어쓴 이상한 남자가 류스케를 덮친다. 뭔가를 느낀 료스케는 같은 대학에서 이 이상한 사이트를 연구하고 있는 카라사와 하루에(唐澤春江, 코유키 분)를 찾아가는데, 이미 학생들도, 연구생들도 모두 사라져버린 후이다. 혼란에 빠진 사회. 인터넷을 매개체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사람들을 덮친다. 점점 더 폐허가 되고 있는 거리에서, 마침내 료스케와 미치가 만나고, 그들을 엄습해 오는 공포와 맞서는데...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니까.. 생략하고요....

헐리우드의 짐 손제로 감독이 2006년 리메이크한 <회로>의 포스터

인터넷이라는 매체, 그것은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이지만 현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인터넷이라는 세계가 '이 세계'에 대한 잠식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죠. 의문의 자살들과 사라짐, 왜 죽는지 알 수 없지만(아마도 외로움이 커다란 이유 같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혹은 사라지고 결국엔 이 지구상에 누가 얼마나 어떻게 살아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원인을 규명해야 할 사람도 사라지고 규명된 원인 하에 대책을 세워야할 사람도 사라지죠. 그저 막막하게 지구를 잠식하는 사라짐. 이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인데요, 몇몇 사라지는 사람들은 '외로움'에 대한 자기고백을 뇌까리는데, 인터넷이 만들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은 관계불가능성의 고백으로 종결됩니다. 사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더 편해진 부분이 없지 않지만, 과연 사람 사이의 진심도 그만큼 잘 통했는지는 의문이죠...

무서운 것은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말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은, 주위의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렸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저 냉엄하고 비관적인 현실 인식. 희망을 위해서는 파국이 필요하다는 저 인식, 이것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죠. 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차라리 다 망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한 번 쯤 해보는 것 같습니다. 감독이 보기에 일상 생활의 크고 작은 만남과 마주침은 결코 우리의 세계를 밝게 만들어주는 혹은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찾아나섬'이 아닙니다. 절절하게 망망대해에서 세계 어딘가에 있을 생존자를 찾아 나서듯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나야하겠다는 결단의 행동으로서의 '찾아나섬'이 아니라면 세상의 만남은 무위라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사람을 찾는 것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과 이익에 대한 집착이 계속 사람을 향해 우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우리의 만남은 모두 허위이며 기만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모여서 살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허위의 세상이기 때문이죠. 모두 인터넷에서 하는 것처럼, 혹은 모두 사라져버리기 전단계의 그을음인 것처럼 허위입니다. 오히려 그곳으로부터 좀더 멀리, 최대한 멀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 살아있을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 혹은 그녀를 만나야한다는 절절함을 가지고 멈추지 않고 항해를 해야한다며 그 이외의 만남에 죽음을 선포하는 이 감독, 뭔가 섬찟합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늘 언제 밥 한 끼 먹자고 말하던 친구에게 전화해서 돈이라도 좀 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뭔가 적절하게 '잘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