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탑>이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었을 때, "난 장준혁이 싫은데!"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장준혁에게 박수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제가 장준혁이라는 캐릭터를 싫어했던 이유는, 제가 특별히 정의로운 인간이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가 정의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줄줄 흘리고 다니는 캐릭터라서 싫었습니다.그는 자신의 욕망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실수를 저지릅니다. 노민국 교수를 찾아가 빌다가 병원을 시끄럽게 만들고, 의료 사고를 어설프게 덮어보려다가 변호사부터 퇴직한 간호사까지,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요.

연극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의 주인공 달수도 장준혁처럼 '거침없이 상승'하려는 인물입니다. 단, 그가 장준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치밀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목표는 그가 속한 조그만 항구 도시 배추조합의 세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실수하지 않고,수많은 사람들을 배신하고 암살합니다. 그는 배추조합과 국회의원 강독구 사이의 검은 거래를 빌미 삼아, 한낱 동네 건달에서 배추조합 이사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데 성공합니다.

"최대한 달수가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캐릭터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달수의 인간적인 면은 최대한 절제해서 관객들에 그에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거예요." 달수 역을 맡은 배우 한동규 씨는 이 연극에서 달수를 일종의 권력욕의 화신처럼 생각하셨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연극은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역사 속 인물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브레히트가 처음에 히틀러를 비판하기 위해 이 희곡을 썼고, 이라크전이 터지고 나서는 알파치노가 부시를 조롱하기 위해서 이 연극을 공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하얀 거탑>을 볼 때와는 달리 관객들은 주인공 달수를 연민할 수 없습니다.

장준혁, 달수, 히틀러, 부시.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권력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실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런데 그 소수가 자신의 손에 주어진 권력을 자기 자신의 상승만을 위해 휘두르는 순간, 그 권력은 거대한 민폐가 됩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부시의 이라크전이 그 거대한 민폐의 예입니다.



'개천의 용'이 되고 싶은 장준혁의 소박한 소망이 달수의 살인이나 히틀러나 부시의 대량 학살과 똑같이 비교될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나의 상승을 위해서는 타인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확신범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동규씨는 "관객들을 일부러 좁고 검은 후문 통로로 들어오게 한 것은 연출가 선생님의 의도였어요. 일종의 쓰레기통 같은 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권력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도 되는 세계. <달수...>의 연출가 김수진씨에게 그것은 '쓰레기통'이었고, 안판석 PD에게 그것은'하얀 거탑'이었던 게 아닐까요.

장준혁을 보면 그를 연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준혁과 같은 사람이 실제 나의 삶에 나타났을 때 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내 가족 중 한 명이 장준혁과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다가 의료 사고를 당한다면 과연 장준혁의 상승욕구를 용인해줄 수 있을까요?

반면, <달수...>를 보고 나면 그를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달수와 같은 사람이 실제 나의 삶에 나타났을 때 나에게 어떤 피해를 줄 지 확실하게 그려집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 달수와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 한 몸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의 상승에 장애가 될 만한 행동은 피해야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할 테니까요.

장준혁을 이해하는 것이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장준혁의 '나도 어쩔 수 없어'라는 표정도 권력의 일면이기는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권력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달수의 '내 권력은 내 신념이다'라는 말 또한 권력의 잔인한 일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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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
부제 : 아르뜨루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브레히트 작
일 시 : 2007.4.20 - 2007.5.27 화~금 8시, 토 4시 7시, 일 4시(5/5, 5/24 4시 7시)
장 소 : 아리랑 소극장
문의 : 02-2278-5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