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이성애 커플을 네 부류로 나눠봅시다. 1번 젊은 남자-젊은 여자, 2번 나이든 남자-나이든 여자, 3번 나이든 남자-젊은 여자, 4번 젊은 남자-나이든 여자. 이중 그 수가 가장 적은 커플 유형은 몇 번일까요? 아마도 4번일 겁니다. 일례로 연애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연예인 커플들만 생각해봐도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 4번은 없는 듯하고, 해외에도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쳐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연극 <댈리의 연인>은 이 흔치 않은 4번 커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댈리는 40대의 가정주부고, 프랭키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댈리는 하나 있던 아들이 어려서 죽고, 남편과도 사랑이 식었습니다. 댈리는 젊어서는 쇼단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던 트럼펫 연주자였고, 지금은 사랑에 대한 시를 낭송할 만큼 낭만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여자입니다. 내면에 젊고 섹시한 여자였던 자신에 대한 추억도 있고, 절절한 사랑에 대한 환상도 간직한 여인인 것입니다.

그런 댈리에게 프랭키가 나타납니다. 프랭키는 댈리의 집을 들락거리다가 댈리와 친해지고, 댈리는 프랭키와 가까워질수록 나이 많은 동네 아주머니가 아니라 그저 사랑 받고 싶은 한 여자가 됩니다. 하지만 댈리가 수동적으로 사랑 받기만을 원하는 여자는 아닙니다. 과감하게 먼저 고백을 하기도 하고, 말에 은근한 뉘앙스를 넣어서 프랭키에 대한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랑 받기를 원하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사랑할 줄도 아는 여자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란 화초처럼 끊임없이 물을 주고 가꾸어줘야 하는 존재다'라고 말합니다. 화초는 스스로에게 물이나 비료를 줄 수 없는 존재이니, 이 말에는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것 아닐까요. 남자들도 그렇듯이, 여자들도 사랑 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하고, 거기에 덧붙여서 여자들은 스스로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연극은 여성의 그런 복잡한 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프랭키가 댈리의 그런 복잡한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댈리와 프랭키의 2인극으로 진행되는 이 연극의 묘미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인데, 이들의 대화 패턴은 한 마디로 동문서답입니다. 나이를 묻는 프랭키 때문에 곤란해하여 "여자들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야"라는 댈리의 대답에는 프랭키 앞에서는 젊은 여자들과 똑같이 대접받고 싶은 댈리의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여자들은 그렇게 나이에 민감한 거죠?"라고 대답합니다. 참다 못한 댈리가 후반부에서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자 "왜 모든 여자들이 절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외치고요. 댈리가 그 나이답게 모든 현실을 감안해서 빙빙 돌려서 말한다면, 프랭키는 자신의 말만을 내뱉는 식입니다. 댈리의 상대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알 거 다 아는 남자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테지요.

자꾸만 젊은 남자에게 눈길이 가는 자신의 마음과도 싸워야 하고 그런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린 남자도 설득시켜야 하는 여자, 댈리. 어쩌면 특이한 중년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할을 맡으신 배우 박현진 님은 모든 여자는 나이가 들었든 어리든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판타지를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한 명 둔 가정주부를 둔 실제 자신의 모습과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극중 배역 사이의 괴리도 그런 판타지에 기대어 상상력으로 메꾸셨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박현진님은 무대에서는 한없이 대담하고 섹시해보였다가, 인터뷰 장소에서는 우리 어머니 모습처럼 차분하고 친근해보이셨습니다.

배우 박현진님, 연극 후 무대에서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연애보다는 생활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워 보이는 중년 여자인 엄마에게도 댈리와 같은 환상이 있을까. 중년 남성들이 '어린 여자'들을 좋아하듯이, 우리 엄마도 '어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도 댈리처럼 성적인 욕망이란 게 남아있을까.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나는 댈리가 되어있을까, 지금 우리 엄마 같은 여자가 되어있을까.

젊은 여성들은 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고, 중년 여성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남성들은 여자의 외로움과 바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연극, <댈리의 애인>입니다.


*** 연극 <댈리의 애인>
원작: 윌리엄 헨리 연출: 송형종 출연배우: 박현진 김은경 배우진 윤만식
2007.2.6-4.1 소극장 가변무대 (한성대역 3번출구)
평일 7시 30분, 주말 및 공휴일 4시 7시
2007.4.3-4.29 로빈아트홀 (삼성역3번출구)
평일 7시 30분, 금토일 4시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