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많지만 진짜 악당은 없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악당의 모습은 대부분 감정 없이 사람을 죽인다는 싸이코 패스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후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표현해주는 작품보다는 주인공의 갈 길에 장애로 작용하는 평면적인 악당을 보여주는 작품이 더 많았으니까요.

연극 <갱스터 NO.1>은 주인공 '늙은 깡패'를 통해서 우리가 몰랐던 진짜 악당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1막은 '늙은 깡패'가 '젊은 깡패'였던 청년 시절을 회상하고, 2막에서는 '늙은 깡패'의 현재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깡패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맘모스 호텔의 개백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깡패 박태식 때문이었습니다. 한낱 동네 건달이었던 주인공의 눈에 부, 권력, 여자 모든 것을 가진 박태식은 영웅처럼 보여집니다. 주인공은 박태식처럼 되고 싶어서 조직폭력배의 길에 들어서고, 결국엔 박태식의 NO.1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밉니다.



NO.1이 되기 위한 과정을 그린 1막에서 '늙은 깡패'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싸이코패스같은 악당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박태식의 애인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면서 "사랑이 너를 살찌게 했다"고 비웃고, 피한 양동이를 온 몸에 뿌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극악함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막에서 NO.1의 자리를 이십 년 넘게 지켜온 '늙은 깡패'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입니다. 2막에서 우리는 일견 싸이코패스처럼 보였던 그의 내면이 어떤 풍경인지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거의 폐인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고, 지금도 잘못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부와 권력의 맛에 빠져서 NO.1의 자리를 버리지 못하죠.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도신 씨는 이런 그의 모습을 두고 "알고 보면 불쌍한 인간인 거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박태식이 25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나옵니다. 그는 감옥에서 완전히 개과천선하여 대학교 학사 학위를 따고, 한 여자와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비하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평범한 노인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이런 박태식이 주인공인 늙은 깡패를 찾아가자, 주인공은 젊은 시절처럼 박태식에게 쩔쩔 맵니다. 부하처럼 커피를 타다주고, 급기야는 자신을 죽여달라면서 박태식에게 매달려 애원합니다. 반면 박태식은 총을 든 주인공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인공을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죠.

왜 현재의 NO.1인 주인공은 한 물 간 과거의 NO.1 앞에서 저렇게도 약해진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똑같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참회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차이 아닐까요? 박태식도 한때 주인공 못지 않은 범죄자였지만 그는 타락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반면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에 'STOP!'을 외치지 못하고 계속 타락해갈 뿐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타락하는 모습에 괴로워하면서 말이죠.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 그래서 안 후에는 멈출 수 있었던 사람 앞에서 인간적으로 비굴해지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그린 악당의 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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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갱스터 NO.1>

일시: 2007년 8월 8일(수) ~ 10월 21일(일)
시간: 평일 8시 / 토,일,공휴일 4시, 7시 / 월요일 공연 없음 / 9월 24,26일 4시, 7시
주관: 문화기획 파란
장소: 예술 극장 <돌과 나무>
문의: 02-766-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