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캐릭터에 대해 네 자 이름 붙이는 게 유행입니다. 버럭 범수, 야동 순재, 주몽 해미 등등. 이건 아마도 그 캐릭터가 이름 앞에 붙은 두 가지 글자로 깔끔하게 요약이 된다는 뜻일 겁니다. 반면, 이렇게 요약이 되지 않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 같은 인물이 그렇지요. 악인이라고 하기엔 여린 면이 있고, 여리다고 하기엔 잘못된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처럼 캐릭터가 단순명료했을 때 오는 재미가 있고, 복잡다단했을 때 오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극 <굿 닥터>는 단순 명료한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있는 연극입니다.

<굿 닥터>는 닐 사이먼이 <갈매기>`<벚꽃 동산>으로 유명한 러시아 극작가 안톱 체홉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각색해서 쓴 연극입니다. 연극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어 짧은 콩트를 보는 것처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상사와 함께 공연을 보다가 상사의 대머리에 재채기를 하고 어쩔 줄 모르는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 <재채기>, 공원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도 고백하지 못하는 노인 커플에 대한 이야기 <늦은 행복>, 아들의 열 아홉 생일을 맞아서 첫 경험을 시켜주려는 아버지와 첫 경험을 무서워하는 아들의 이야기 <생일 선물> 등이 그 에피소드입니다.



그 중 <재채기>를 살펴볼까요. 삼림청에 근무하는 하급 공무원 이반은 ‘소심 이반’ 혹은 ‘비굴 이반’으로 불릴 만합니다. 그는 그 이름도 재미있는 오페라 <수염난 백작부인>을 보러 갔다가 앞자리에서 삼림청 장관을 발견합니다. 장관에게 잘 보이려고 공연 중에도 끊임없이 말을 걸면서 굽실거립니다. 얼마나 떠드는지 장관이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첫 번째 문제가 오페라의 절정 부분에서 벌어집니다. 이반이 장관의 대머리에 재채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안 그래도 허리를 굽히고 있던 이반은 어쩔 줄 모르고 굽실거립니다.

이반은 집에 와서도 장관의 젖은 대머리에 대해 잊어버리질 못합니다. 고뇌에 휩싸인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장관을 다시 찾아가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난 장관은 한 마디로 ‘무심 장관’ 정도 됩니다. 이반이 누구인지 기억도 못 하고 있습니다. 소심한 사람에게는 태산 같았던 일이 무심한 사람에게는 먼지만도 못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자주 빠지게 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지요. 장관은 괜찮다며 집에 가서 목욕이나 하라는 말과 함께 이반을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이반이 그의 장관님이 시키는 대로 목욕을 하기 전에, 이반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서 두 번째 문제가 생겨납니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왜 이렇게 굽실거린 거지?!!!’ 그리고 이반은 고뇌 대신 분노에 휩싸여 장관에게 찾아갑니다. 이때 이반의 모습은 ‘소심 이반’이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수준으로 다릅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한 번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건 동서고금의 법칙(?)인가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 월드 같은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성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혈액형에 따라 분류해놓은 이야기도 있고, 당신이 어떤 유형인지 알려주겠다는 심리 테스트도 있습니다. 그런 글들을 재미있게 읽는 것처럼, 이 연극을 즐기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심 이반'은 이 연극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중 하나일 뿐, <굿 닥터>안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인물에 속할까, 내 주변 인물들은 어떤 인물에 속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테고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굿 닥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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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굿 닥터, 행복한 수다

일시: 2007년 3월 14일(수) ~ 5월 27일(일) 평일 19:30 / 토,일,공휴일 15:00, 18:00 / 월 쉼
장 소 : 대학로 낙산씨어터
주관: 극단 유리가면
문의: 02-830-8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