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봤네 관악선녀 2탄
이상한 나라의 여자들 : 차-음료와 화장품 광고

연강으로 점심을 먹지 못해 쉬는 시간에 학교 매점을 찾았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음료수를 고르기 위해 다가간 매점 냉장고에는 0칼로리-혹은 콜라겐과 섬유소 함양을 외치는 비슷비슷한 차와 음료들이 전면에 깔려 있었다.
바야흐로, 마실 것 하나에도 자기 관리의 시대다. 그런데 말이 자기 관리지, 어쩐지 내 의지로 하는 관리가 아닌 것 같은 이 기묘한 느낌은 뭘까?

언니. 림보는 왜 하세요

미녀 스타가 중력을 무시하고 벽을 타고 올라간다.
섹시하게 춤추며 림보를 한다.
다리를 꼬고 앉아 다른 늘씬한 여자들의 몸매를 보며 긴장한다.
허리와 배가 드러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이런 화면을 보고 난 뒤에는 어쩐지 마음이 영 불편해진다. 그런 우리를 향해 광고주는 기다렸다는 듯 속삭인다. "이건 0칼로리야." 과거 차(茶) 광고가 광활한 재배지를 보여주는 식의 친환경적 이미지에 집착해왔다면 최근의 음료 광고는 아름다운 육체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최고를 위한 사치라는 식의 명품과 웰빙의 결합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류를 이루는 것은 신체 관리의 이미지다.) 이러한 특성은 광고 전반에 드러나는 성 상품화와 원인과 결과를 호도하는 편집증적 태도 -기본적으로, 어떤 상품은 광고에 드러나는 모델, 혹은 이미지의 정당한 원인이나 이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암묵적으로 그러하다는 암시를 준다.- 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도한 참견이다.

집단 최면의 시대
화장품 광고 속 여성의 아름다움은 철저히 20대의 아름다움이다. 불행하게도, 그렇다. 30~40대의 여성이 등장했다면 그녀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비교대상으로서 존재한다. 이런 측면은 광고 전반에 드러난다. 김치 냉장고를 뒤적이고, 세탁기를 돌리는 그 순간에도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품광고에 이르러서는 광고를 보고 있는 당신이, 바로 그 주체가 될 것을 요구 받는다. 젊음과 아름다움은 가공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이 된다. 화장품은 아무리 비싸도 사치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당연한 투자가 되고, 30대에 30대의 얼굴을 가지는 것. 40대, 50대의 얼굴을 그대로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된다. -최근 늘어난 30~40대 화장품 모델들을 보라. 그들은, 여성의 나이에 관대해진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노골적으로 관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관리’하기 때문이지!’- 이렇게 타자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 욕망은 자기 관리라는 허울을 쓰고 우리의 목을 조인다. 이러한 광고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고 학교를 벗어나 사회활동을 하게 되면 화장에 대한 암묵적인, 때로는 노골적인 강요를 받게 된다. 이른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어쩌다 화장을 하지 못하는 날이면 자신의 맨 얼굴을 마땅히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논리가 제법 먹힌다. 실제로 그녀들은 화장 하지 않은 날엔 모자를 눌러쓰고 마땅히 겸손해진다. 이것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인가? 아니라면 이 괴현상의 이유는 무엇인가? 외부의 압박을 넘어서, 이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자면, 그건 화장하는 주체가 그 시기 자신의 실제 얼굴을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과 후반의 피부는 다를 수밖에 없다. 30대가 되면 또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럼, 누가 우릴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지?

내 얼굴에 참견 마
우리가 광고 속 화장품을 보면서, 그 모델들을 통해 보는 그 이미지는 환상일 뿐이다. 칼로리 제로의 음료를 마시는 연예인들의 몸매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예외이지 평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균적 미적 가치인양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걸 마시고 이걸 바르면 이 환상은 네 것이 되리라. 그런데 유독 여성을 주 소비층으로 한 상품에 이러한 신체 관련 환상이 판을 친다. 이러한 환상에 기준 미달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 정도에 따라 비난이나 격려를 받으며 오늘도 그 음료와 그 화장품이, 그 제품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실제 구매에 영향을 끼치고, 광고는 또 다른 상품을 팔기 위해 또 다시 우리의 콤플렉스를 만들고 그걸 다시 들쑤시고 자극한다.

바야흐로, 타자의 욕망으로 자신을 꾸며야 하는, 집단 최면의 시대이다.
정교한 광고의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가로등이라는 따뜻한 환상에 몸을 던지는 날벌레와 우리가 다를 것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