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봤네 관악 선녀
작가 배나은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이 글의 문맥에서 사용될 포르노에 대한 정의는 현 사회의 경제 체제와 성별 권력 관계 속에서의 생산물로 한정한다는 것을 밝힌다.

청출어람이라고 들어는 봤나

남학생 25명이 수명씩 떼를 지어 여중생 1명을 지속적으로 성폭행 했다.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이러한 사건은 결코 처음이 아니며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가 incoming 폴더에 쌓아두고 보는 헨타이망가나 야동을 떠올려보자.) 화면 속 은밀한 상상력이 누추한 현실로 전이되는 순간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상을 지키기 위해 자그마한 목소리로 변명한다. ‘집안 교육이 문제지. 쯧쯧.’, ‘나는 10년 동안 꾸준히 봤어도 아무 짓도 안하는데, 그 놈들이 좀 이상한 놈 들이구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씁쓸한 기만에 관한 것이다.

당신이 최근 가장 감명 깊게 본 포르노는 뭔가요?
누군가 묻는다. ‘가장 최근 감명 깊게 본 책이나 영화는 뭔가요?’ 또 다른 누군가가 묻는다. ‘가장 최근 감명 깊게 본 야설이나 야동은 뭔가요?’ 조금 더 진도를 나가 볼까.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나 영화는 뭔가요?’라는 질문과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포르노는 뭔가요?’ 전자의 질문에 임하는 자세와 후자의 질문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수많은 영화나 책. 기타 text로부터 정서적 인식적 영향을 받았다고 말함에 있어서는 주저하지 않으나 유독 포르노에 있어서만큼은 ‘그건 단지 포르노일 뿐이지.’라는 기묘한 자세를 취한다. 설령 포르노로부터 성에 대한 수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만일 내가 잘못된 성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것은 단지 부재했던 올바른 성교육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그날 밤 봤던 포르노는 생리적 경험으로서 완전히 배출 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나의 행동 양식에 침투한다.

그러니까 19금이라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당신만 해도, 정말 19세가 넘어서, 성인식을 치루고 그 날 저녁 처음으로 두근두근하며 포르노를 봤는지. 인터넷의 보급이후로 포르노를 접하는 연령의 제한선은 이미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맥락에 있어서도 포르노를 보는 주체가 19세인지 99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말하는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포르노를 단지 성행위의 재현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나아가 포르노의 성은 실제의 성과 분리되어 있는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포르노 속의 성을 단순히 연기나 환상으로 치부할 때 그 속에 산재한 수많은 성 착취와 폭력의 구조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용납되고 만다. 그리고 우리의 그 암묵적 용납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유전되고 있다. 그것도 더욱 더 진하게.

이거라도 있어야지!
포르노에 대한 놀라운 주장 중 하나는 그것이 성폭력 발생을 줄인다는 그 순기능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어젯밤에 본 포르노는 나의 생리적 욕망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또 다른 욕망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 말했듯 포르노 속 ‘환상’은 생리적 경험으로서 완전히 배출 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나의 행동 양식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그것은 1차적으로는 성을 매매하는 과정이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성별과 그로인한 역할 구분에 대한 지침서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성폭력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화나 게임의 폭력성이 현실의 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하늘이 떠나가라 외치면서도 수많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원인으로서의 포르노를 말하는 것은 어쩐지 머뭇거린다. 포르노에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라는 어떤 일방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포르노에 대한 반대는 단순히 당신의 하드 속 소장물들을 습격하겠다는 위협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과도 분명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쾌감과 그것을 학습하는 주체로서의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그것을 계속 덮어두고 있는 한 우리들의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청출어람’이란 무엇인지, 어른들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참고>
섹슈얼리티강의/한국성폭력상담소
수많은 포르노

방송 : 4월 15일 (일) 오후 07:00, 100.3Mhz
인터넷 실시간 청취 : www.radiogf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