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선거철이다. 거리에는 후보자 현수막이 가득하고 유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홍보 음악이 요란하다. 선거철이면 으레 듣게 되는 것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다. 민주주의democracy가 국민demo에 의한 지배kratos를 뜻한다는 점에서 현대 대의제 민주정에서 선거는 중요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언젠가부터 ‘민주주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선거’에 대해서도 질문하기를 멈춘 것은 아닐까?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이 것은 “큰 착각”이라며 국민이 자유로운 때는 “오직 선거하는 기간 뿐”이라 말했다. 이는 21세기 민주주의에도 적용 가능한 통찰이다.

흔히 선거철에는 고개 숙여 인사하기 바쁜 후보자가 선거 후에는 목이 뻣뻣하다고 말한다. 선거는 국민을 대신할 공복을 뽑는 과정이지만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 위에 존재하는 듯 ‘지배자’의 면모를 보이기 일쑤다. 여기에 선거의 가장 큰 맹점이 있다.

이상적 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한 아테네 민주정은 모든 시민에 의한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선거’ 보다는 ‘추첨’을 적극 활용했다. 민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업무는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에게 위임했다.

현대에는 추첨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추첨은 모든 “후보자를 감정적으로 소외시키지 않는 가장 도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추첨에서 선출되지 못했다고 해서 내 학식이나 인품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운이 없었을 뿐이다.

<선거는 민주적인가>의 저자 버나드 마넹은 제목 그대로 현대 대의제 민주정이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선거가 진정 민주적인가 묻는다. 선거는 학식이 뛰어나고 재산이 많고 언변이 좋은 사람만 나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리는 엘리트주의가 팽배하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유권자들의 '자발적 지배 허용'이라는 비민주적 의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왜 우리는 추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가?” 추첨제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다. 선거철을 맞아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