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은행이 있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극빈층임을 증명해야 한다. 담보도 신용조회도 보증인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은 ‘여성’이어야 한다.

이 은행의 이름은 그라민(Grameen), 뱅골어로 ‘시골’ ‘마을’이라는 뜻이다. 1983년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최초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은행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 최초의 은행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신용만 있으면 누구든 돈을 빌릴 수 있는 무보증·무담보의 소액신용대출 제도를 말한다.

세상엔 이런 은행이 있다!

“다른 은행들은 당신을 잠재적인 사기꾼으로 가정하죠. 그래서 당신에게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묶어두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가정합니다.”

언뜻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단체 같지만 그라민은행은 ‘자선’을 베푸는 게 아니라 ‘사업’을 하고 있다. 실제로 1992년에서 1995년까지 이 은행의 영업 수입은 1,900만 달러에서 6,000만 달러로 늘었다.

그라민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98%에 이르고 1993년 이후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는 아시아를 비롯한 북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다. 국내에도 신나는조합, 사회연대은행 등 그라민은행의 한국 지부가 있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글로벌 기업 못지않다.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본스타인은 방글라데시의 농촌 마을에 머물면서 그라민은행을 취재했다. 처음에는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의 성공 신화에 집중했다. 그는 실제로 위대한 전략가였고 뛰어나 이야기꾼이었다. 본스타인은 유누스를 매우 매력적이고 “1만 2000명이 넘는 직원을 둔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만큼 친근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본스타인은 유누스라는 걸출한 인물 외에도 그라민은행의 열정적인 직원과 성실한 채무자에 관심을 두었다.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성공한 사회적 기업, 실적 좋은 은행의 사례를 담은 보고서이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은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맞는 아내였던 만지라는 그라민은행 대표로 벨기에 국왕을 만났고 대학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극빈층이었던 로케아는 딸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누르자한은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해 그라민은행의 직원이 되었고 지금은 10년 이상 최고위직에서 일하고 있다.

<그라민은행 이야기>는 일반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에게도 유용한 '이야기'이다. 그라민은행은 최초 42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여러 개 해외지사까지 갖춘 어엿한 글로벌 기업이다. 또한 그라민에너지, 그라민사이버넷(인터넷), 그라민체크(직물) 등 현재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