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당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꺼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모두 똑같아 지는거야.



우리가 무엇인가를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사건이 지나간 후의 일입니다. 영화는 츠네오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죠. 포커스가 맞지 않는 스틸사진과 츠네오의 나레이션. 소중하지만, 이미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 츠네오의 나레이션은 형체가 흐릿한 사진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기억은 무척이나 또렷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부서진 조개껍질, 부서진 전구, 바다, 겨울 여행을 기억하는 것은 사랑의 일부분만을 기억하려는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에서 나온 고집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어느 시점을 불러내오는 도입부는 영화가 이별에 대해 말할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영화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할애되고, 어떤 이유에서 이별에 이르는지 그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영화는 이별은 단지 사랑의 끝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삶이 곧 죽음을 향한 중단 없는 과정이듯 사랑은 이별만을 향해 전진합니다. 영화의 특별함은 소위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삭제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부터 일상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 이별장면까지를 한 호흡에 담았습니다. 오직 사랑의 시간만을 기록하는 이 영화는, 그러므로 사랑과 이별의 관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랑이 이별을 전제한다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별이 두려워서 사랑을 기피하지는 않습니다. 조제에게, 츠네오와의 사랑은 분명 삶의 방식을 뒤바뀌게 해 준 사건입니다. 깊고 깊은 어둠 속, 처음부터 혼자만 있고 비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적막 속에 살던 조제는 할머니의 보호 속에 모든 욕망을 유폐시키고 벽장 하나 만의 공간을 차지합니다. 정약용이 그랬던가요. 욕망이 없는 사람은 천지간에 버려진 하나의 물건이라고. 조제가 꼭 그랬습니다. 할머니가 주워온 오래된 물건들처럼, 조제도 벽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헝겊 인형은 조제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츠네오가 찾아옵니다. 조제와 츠네오가 처음 만난 날, 조제는 츠네오에게 식칼을 휘두릅니다.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신이었죠.

조제가 하고 싶은 것, 바다를 보고 호랑이를 보는 것인데요. 이 두 가지를 달성하며 조제는 깊은 바다 속, 아마도 벽장 구석에서 지금의 자리, 츠네오의 옆으로 와야할 이유를 발견합니다.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남자친구와 함께 보고 가장 야한 섹스를 나누며 바다를 봅니다. 어둠 속의 삶이 익숙해진 조제는 모든 만남에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의미를 부여합니다. 생은 찰나의 순간이고 짧은 생 속의 사랑은 '지나감'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을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매 순간에 '가장'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사랑이 지나간 후를 견딜 수 있는 무언가로 바꿔내는 것이겠죠.

츠네오는 울지만 조제는 울지 않습니다. 츠네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츠네오가 울음을 터뜨리는 직전까지, 어쩌면 그 모두가 츠네오의 (일방적인)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츠네오에게는 아마 이런 기억들이 남았던 것이겠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말입니다.

츠네오가 떠나고 홀로 물고기를 구우며 방바닥이 부서지리만치 뛰어내리는 조제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인데요, 아마 이것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유일한조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츠네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조제가 아닌 살아있는 조제 말입니다.

한 번의 사랑이 지나가고 각자에게 자기의 의미를 만든 두 사람은 이제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랑이 이별을 전제하듯 이별은 또한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며, 그러므로 이별은 절망적이지 않은 것이겠죠.

조제는 '인어공주'를 닮았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바닥에 끌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인어공주 같죠. 민담으로부터 유래한 인어공주에는 다양한 결말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인어공주가 거품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기로 변해 세상의 온기의 일부가 되죠.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비극의 결말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진 당사자, 그 자신 뿐인 것 같습니다. 어떤 측면에선 열심히 사랑한 자가 결국 얻는 것은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 열심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