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가 있고 써니가 있다. 영화 속에서 둘의 영어식 표기는 같다. 어쨌든 주인공은 순이이면서 써니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순이도 아니고 써니도 아니지만 순이와 써니로 불리는 어떤 여인이다. 순이는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밀려 다닌다. 써니는 전쟁 상황과 밴드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흘러 다닌다. 순이와 써니 사이에서 배회하는, 진정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떠밀려 다니거나 흘러 다니는 동안, 오기를 부린다. 그리고 마침내 전장 한 가운데에서 만난 남편의 뺨을 때린다. 두 번, 세 번 뺨을 때리는 동안 문득 생각하게 된다. 오기의 끝을 본 여인, 이 사람은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준익의 세 번째 음악 영화 <님은 먼 곳에>가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세 차원으로 겹치는 주인공의 이미지 속에서 뚜렷한 일관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수애가 분한 여인이 왜 베트남을 향해 떠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끝까지 남편을 찾으려 하는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순이도 써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순이와 써니에게 억눌려 있던 세 번째 여인의 등장을 알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므로 스토리는 대단히 개연성이 강하다. 이 영화가 이준익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음악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밴드가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순이도 아니고 써니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온당한 음악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수애는 어떻게 뭘 입어도 예뻤다! 전쟁터의 낭만

  

순이/써니의 여정은 베트남과 미국 사이에서 떠밀렸던 한국의 베트남전쟁과도 비슷한 뉘앙스를 갖게 된다. 밴드는 베트남 군인들과 미국 군인들에게서 모두 포로 취급을 받게 된다. 베트콩의 땅굴에서 밴드는 질문을 받는다. 왜 왔는가. 밴드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왔다고 말한다. 그것은 군인들의 이유와는 다른 밴드의 이유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베트콩 장교는 얘기한다. 돈을 위해 왔다면 한국의 군인들과 같은 이유에서 온 것이라고. 정만(정진영)이 말을 받는다. 군인들은 평화를 위해 왔다고. 베트콩 장교는 되묻는다. 너에게 평화는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고. 그리고 순이는 말한다. 남편 찾으러 왔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한국의 참전 이유는 미국의 원조를 얻어내고, 전쟁특수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며, 국제사회에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참전했다고 말하면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만들었다. 베트남의 정글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했던 군인들에게도, 그들에게 출병의 꽃다발을 걸어주는 가족들에게도 자유민주주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선전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사람들은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이 전장에서 죽어나가야 했던 이유, 자신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해석되지 않은 채 한 가정에 혹은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이 상처를 국가는 해석해주지 않는다. 국가는 해석해주기 보다는 상처를 영광의 문신처럼 여기라고 답할 뿐이다. 그 장소에서 전쟁과 전쟁 행위에 대한 낭만적 판타지가 생겨난다. 피를 나눈 전우애, 차가운 듯하지만 따뜻한 상관의 자상함, 위문 공연을 왔던 밴드와의 놀이, 민간인으로 가장했던 베트콩 게릴라를 무찔렀던 무용담이 그런 낭만이 빚어낸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전쟁터의 실상은 이렇다

  

이준익의 <님은 먼 곳에>는 이러한 국가의 낭만을 부수는 낭만이다. 순이는 베트콩의 장교에게 남편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어떤 명분보다 강력하며 진정성이 있는 낭만이다. 이 영화의 큰 플롯은 진정 낭만적이다. 머나먼 전장에 있는 남편을 찾아가는 아내의 순애보, 남편을 만나기 위해 밴드에 가입하는 아내. 비가 내리는 베트남에서 귀엽게 군복을 차려입은 아내는 남편과 피를 나눈 동료들 앞에서 귀여운 춤을 추며 용기를 북돋운다. 영화의 낭만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전쟁에 대한 낭만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고, 그리고 이 순간은 어디에선가 날아온 포탄과 공격으로 순식간에 파탄난다. 낭만의 공연장은 아비규환의 전장으로 되돌아온다. 밴드는 공연비를 받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포탄과 탄약을 차에 싣고 도망간다. 이것이 낭만적으로 미화되었던 전장의 실체이다. 수애는 순애보의 낭만을 운반하며 전쟁의 낭만들을 하나 둘 부순다. 사악한 존재로 알았던 베트콩은 그들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영원한 우방으로 알았던 미국은 우방이라기보다는 한국군에서 공연을 몇 번 한 것보다 많은 돈을 한 번에 줄 수 있는 경제력 있는 대국의 군대에 불과하다. 이준익의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를 대상으로 어떤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나 플롯의 한계에 대한 논쟁이나 여성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방식, 낭만을 부수는 낭만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낭만의 천적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즈음의 시대에서 대중적인 감화력과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낭만에 대해 낭만으로 투쟁하는 것, 그것은 유용할까. 이 영화에서 유일한 사실적인 장면은 전쟁 장면이다. 여전히 사실은 낭만이 발생해야 하는,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장소의 시작점이 된다. 그리고 낭만은 사실에게 날개를 달아주지만, 그것은 일정한 높이 이상을 날기에는 벅찬 이카루스의 날개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것은 순이와 써니 모두에게서 탈출한 새로운 여인의 등장이다. 낭만과 사실 사이를 오간 끝에 결국 원하던 전장에 서게 된 여자. 이 여인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든, 어쨌든 기대를 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