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모 사이트에서 게시된 <뼈의 최후 통첩>은 9분 11초의 짧은 상영시간(?) 내에 무척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을 연기했던 <본 얼티메이덤 The Bourne Ultimatum>을 리메이크(?)한 대작되시겠다. ‘뼈’는 당연히 Bourne의 음차인 ‘본bone’에서 나왔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다. 요원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가 무척 중요한 통화를 하며 어느 곳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어디일까? 모든 것이 비밀로 둘러싸인 그곳은 ‘전주 덕진 경찰서’! 광우병 소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려다 붙잡힌 고3의 남학생(본!)은 과묵하고 말이 없다. 정보과 형사는 그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일별한다. “모의고사 성적이 엉망이로군.” 멋진 대사들이 많다.

우스개 소리에도 ‘뼈’가 담겨 있는 법이다. 올해 들었던 농담 중 가장 재미있었던 얘기는, 노무현 정권은 집권 내내 조중동과 싸웠는데,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초중고와 싸우더라는, 강남 유머였다. 역시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해학과 골계미의 DNA는, 짜증나는 정국마저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국보급 보물이다. 먼발치에서 미친소 사태를 지켜보고, <뼈의 최후통첩>을 본 입장에서, 중요한 논점 몇 가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위험하다는데요?”

첫 번째는 전문가 집단의 신뢰도 상실이다. 전문가 집단은 정치논리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유능해야 한다. 미친소 사태에서 부각되는 전문가 집단은 과학자들과 외교통상교섭 종사자들이다. 공개된 정보들을 취합해보자면, 한마디로 광우병은 위험하지만, 현 단계에서 과학자들이 광우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많지 않다. 과학자들에게는 인간 광우병에 대해 더 많은 사례를 조사/연구할 것이 주문된다. 이것은 미국이건 한국이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즉 양국이 쥐고 있는 과학적 근거들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외교 통상 라인에서 대두된다. 외교 통상 라인이 정치논리에 휘말려 교섭의 과정에서 비전문적으로, 한 수 접어주고 임했다는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국 측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는 항변이 있지만, 그것을 반박하는 정부 문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졌다. 교섭의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란 곧 OIE 기준으로 교환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과학 논리가 통상논리로 교환되었고, 통상논리는 정치논리에 휘말렸다. 그러다보니 ‘해석을 실수로 잘못했다’는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 나온다. 정부 외교 관료들부터 영어 몰입식 교육을 다시 받아야할 것 같다. 이러한 정치논리에 의한 전문가 집단의 무력화는 민영 기관의 수장 교체 시도, 국책 연구기관에 대한 외압설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정치의 나팔수가 된다면, 그 위기는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지경으로 발전할 것이다.

“손석희가 말 더듬는 것 본 적 있나? 이번 토론은 우리의 승리야.”

두 번째는 민의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현 정부는 ‘민의’에 대해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민의를 존재하는 실체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념과 경험을 통해 민의를 번역해 멋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촛불 집회에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식은,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해본 적이 없는 구세대 정치 관료들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대중이 매우 정치적으로 각성이 된 존재들이며 유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선거가 끝났으니 대중의 역할은 끝났다는 식의 사고가 뇌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소통의 창구가 제 기능을 상실한 지금, 즉 정부 관료들과 여권의 청취력과 이해력이 현저히 저하된 요즘의 시국과 같은 상황에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대중은 언제나 ‘거리’를 택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공안 당국과 정부는 이들 거리로 흘러나온 사람들을 ‘운동권’ 혹은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 받는 우매한 대중’으로 호명한다. 그러나 이 호명에 붙들리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운동권이 대중의 역량을 따라가지 못해 당황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동권도 정치권 못지않게 당황하고 있다. 왜냐하면 운동권들 역시 ‘자발적으로’ 거리에 서는 대중의 실체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운동권은 행동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말을 만드는 것’이다. 구호를 만들고, ‘요구하는 문장’으로 번역되지 않는 현실의 불만들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운동권의 역할이다. 이런 역할 때문에 운동권은 언제나 정치권 못지않게 계몽적이었다. 그러나 말은 현실을 대체할 수 없고, 말과 현실 사이에는 도착하는 시간에 있어 차이가 있다. 집회 결사의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라는 문장은, 요즘 정국에 있어 현실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탑승하고, 그 안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자신들이 운동권이라는 의식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 지금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낯익은 이념의 적, 즉 진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모르는 미증유의 집단이라는 사실에 쫄았다. 거리에 선 대중에게서 낯선 배후세력의 향기를 맡으려는 이 미련한 노력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못난 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기를 쓴다. 지금의 정부는, 한마디로 확성기와 같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일들이 정부를 거쳐서 대단히 큰 일로 발전한다. 생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가 하룻밤 새 백여명이 경찰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고등학생을 붙잡고 묻고 있다. 너의 배후세력은 누구냐고. 지금 거리에 선 사람들의 배후세력은, 사태를 키우고 있는 현 정부, 자신일 것이다.

“4800만이 지켜보고 있다. 똑바로 해라.”

해야 할 말은 많은데, 지면은 제한되어 있다. 현 정부는 많은 무리수를 두며 경제와 정치, 사회 세 분야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이 정권의 위기냐 하면 그런 것 같진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 정부가 내건 비전에 나름의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요즘 세상에선 별로 없다. 현 정부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증명될 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또한 분명 광우병과 관련된 위기의식은 과장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지금은 차분한 토론보다는 선정적인 폭로가 더 우세한 위치를 차지한 국면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안들이 광우병 얘기에 묻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특검 이후, 삼성은 어찌되고 있는지, 공기업 민영화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것이 국가적으로 미칠 파장은 무엇인지 등이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대운하가 철저히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징후는 텍스트적인 맥락으로 수렴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일들이 무관심 속에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아마 정부 관료들은 그럴 것 같다. <뼈의 최후 통첩>을 찾아본다면, 편집이 너무 깔끔하고, 성우들의 연기가 노련한 것으로 보아 전문가가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고, 이는 곧 배후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뭐랄까, 지금의 정부와 여당은, 너무 낡았다. 낡아도 너무 낡았다. 여당이 무식하고 야당이 무능하니, 별 수 없이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제발 귀좀 열고 살아야 할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