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죄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없어진, 더불어 의미가 사라진 대지와 바람 속에서 거친 산비탈을 오르듯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가 있다면, 누구일까, 더 괴로운 사람은. 카와세 나오미 감독의 <너를 보내는 숲>은 남겨진 자들의 몫으로 돌려진 위로와 회복, 그것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마치코는 아들을 잃었다. 남편과 아이 중 한 명을 살릴 수 있는 선택이 주어졌는데, 아이의 손을 놨다. 남편은 오렌지빛 꽃으로 마치코를 때린다. 왜 아이를 살리지 않았느냐고. 아이를 살리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살게 될 여생이 두려웠을 것이다. 마치코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원에 간병인으로 들어간다. 삶을 관조할 수 없게 된 마치코의 눈빛은 공허하다.

요양원엔 시게키라는 할아버지가 있다. 성격이 괴팍하고 반쯤 실성한 시게키는, 마코라는 이름의 부인과 사별하였다. 33년 전, 아주 젊었을 때 부인과 사별하였지만, 시게키는 마코의 죽음이 너무 괴롭다. 그는 낡은 가방을 흡사 생명을 껴안듯 소중히 여기며, 누구도 이 가방을 만지게 놔두지 않는다. 시게키는 마치코에게 심술을 부린다. 마치코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지우면 마코가 된다.

어느 날 시게키는 요양원의 승려에게 묻는다. “나는 살아 있습니까?” 시게키에게 살아 있음은 죽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에겐 좀 더 적극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특히나 너무나 사랑해주고 싶은데,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이 세상에 더는 있지 않다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아이와 부인과의 작별을 통해 각각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두 사람에겐, 삶의 의미가 되돌아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둘이 함께 길을 나선다. 길의 어느 대목에서 차가 고장나고, 시게키는 차 안에서 기다리라는 마치코의 말을 듣지 않고 산 길 속으로 휘적 휘적 걸어 들어간다. 마치코도 시게키를 찾아 산길에 접어든다.

산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갑작스런 폭우와 불어난 개울, 좀처럼 불이 붙지 않는 장작과 젖은 옷, 그리고 한 그루의 나무이다. 삶에 홀린 듯 죽음에 이끌린 듯 멈추지 않고 걸어나가던 시게키는 어느 순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던 가방을 마치코에게 맡긴다. 마치코에게 가방이 건네지는 순간은, 특별히 공을 들여 촬영되지 않았다. 먼 길을 떠난 사람이 대신 짐을 들어주듯, 당연하다는 듯 시게키는 가방을 건넨다. 어느 나무에 이르러, 시게키는 33년 전에 죽은 마코와의 진정한 이별을 맞이한다. 33년간 꾸준히 모아왔던 노트를 땅에 묻으며, 시게키는 이제야 마코를 떠나보낸다. 죽은 지 33년이 흐르면, 망자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된 시게키가 기억하는 것은 젊은 마코의 모습이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나무의 껍질을 만지는 거친 시게키의 손길과 함께, 마코도 시게키와의 인연에 결구를 맺는다.

영화는, 흐느끼듯 격정적이며 감상적이다. 어느 개인이 간직한 특화된 감상은 참으로 객관화시켜 언급하기 힘들다. 보통 그것은 고통이나 상처, 혹은 상실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가와세 나오미의 <너를 보내는 숲>은 모든 관객에게 죽음에 대한 성찰을 주기 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잠시 얼굴을 기댈 어깨를 빌려주기 위해 태어난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굳이 영화가 모든 관객을 납득시키기 위해 식은땀을 흘려야 할 이유는 없다. 가와세 나오미에게 필름이란, 세상을 향해 열어놓은 조그마한 창이 아닌가 싶다. 때가 되면 창을 닫든가,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올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처음의 시퀀스에서, 숨 막힐 듯 아름답고 아릿한 영상을 보게 된다. 바람에 따라 흐르는 나무의 율동을 지켜보며, 어느 소설가가 “한 마음이 다른 마음을 부르는 것, 그것이 바람”이라고 속삭였던, 그 풍경을 이해하게 된다.

어깨 빌려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