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하늘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화를 봅니까? 왜 당신은 바람소리를 듣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음악을 듣습니까?”

“당신의 영화는 무엇을 하려는 영화인가?”라는 어느 관객의 질문에, 차이밍량 감독이 이렇게 답했다고 정성일은 전한 바 있다. 정확히는 대답이라기보다는 반문일 것이다. 반문은 즉답을 회피하는 고도의 수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문의 위치를 수정하고 이를 통해 답의 수준을 바꾸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연, 즉 객관을 ‘보는’ 차원을 벗어나 영화라는 인공의 작품을 만들어 내려하고 감상하려는 욕망 속에는, 객관적인 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를 삶에 인입시키려는 마음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차이밍량 감독의 2003년작, <안녕, 용문객잔>은 좁게는 호금전의 <용문객잔>이라는 영화 속에서, 넓게는 ‘복화극장’이라는 극장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해 낸 수작이다.

<안녕, 용문객잔>속의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공간이 아니다. 10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상영관엔 고작 대여섯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관객들 외에는 영화를 영사하는 영사기사와 매표소를 지키고 청소를 하는 절름발이 여인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사람들 중,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굳은 자세로 영화를 지켜보는 노인 한 명과, 다른 노인이 데리고 온 어린 손자뿐이다. 그러니 이 극장은 영화를 보기 위한 곳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잊혀져가는 영화와 극장에 대한 회한과 추억을 음미하는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차이밍량은 오히려 텅 빈 객석을 향해 상영되는 <용문객잔>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이 세상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릴지라도 영화가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고, 그렇다면 영화를 만들겠다는 어떤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그 증거로, 영화관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상영되고 있는 영화의 ‘사운드’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관객들은 영화를 외면한 채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행위는 이들이 외면하고 있는 영화의 사운드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용문객잔>의 소리에 의해 관객들의 행위는 공포로, 혹은 코미디로, 혹은 외로움으로 재설정된다. 즉, 차이밍량이 해내고 싶었던 것은 <용문객잔>이라는 영화를, 단순히 스크린에서 상영하며 오마주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안녕, 용문객잔>이라는 영화의 등장인물로 재설정해내는 것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즉, <안녕, 용문객잔>은 이러한 시도를 단순한 실험적 형식의 한 예로만 남긴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영화로 재구성해내는 것에도 성공한다.

<용문객잔>이라는 영화를 비롯한 <안녕, 용문객잔>의 등장인물들은 복잡한 복화극장 속에서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예를 들면, 시종일관 진지하게 영화를 지켜보더니 마지막 순간에 눈물을 흘리던 노인은, <용문객잔>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마오티엔이다. 그는 복화극장과 <용문객잔>이라는 영화, 그리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관객들의 운동 속에서 자신이 출연했던 최초의 영화와 대면한다. 일본에서 왔다는 동성애자 청년은 자신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이 관객, 저 관객에게 다가가고 화장실에서 기회를 엿보더니 급기야 미로처럼 얽힌 극장의 구석구석을 전전하게 된다. 그 극장엔 청년과 같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고, 그 속에서 청년의 방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그에게는 외로움이 있고 극장의 곳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마주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마지막으로 발견해낸 사람이 얘기해 준, 극장에 살고 있다는 귀신에 놀라 퇴장한다. 그가 퇴장한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귀신으로 오해받은 한 여성이 군것질을 하는 소리가 오래도록 스크린에 남게 된다. 매표소의 절름발이 여인은 영사기사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덥힌 빵을 영사실에 슬쩍 밀어 넣어준다. 하지만, 다시 영사실을 찾았을 때 빵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영사기사는 피다 만 담배를 자리에 둔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영사기사는 담배를 피우다 그녀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담배를 둔 채 나갔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텅 빈 극장을 정리한 그녀는 짐을 싸 어딘가로 떠난다. 뒤늦게 그녀를 찾으려는 영사기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비 내리는 거리로 나서지만, 그녀는 미련 없이 떠난다. 이 모든 사건들이 ‘복화극장’에서 벌어진다. 이를테면, 다음날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가게 될 복화극장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셈이다. 요즘은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그 극장은, 복잡한 내면을 감추고 오직 스크린을 통해서만 이야기하려는 고집과, 또 한편 어떤 의미에서는 섬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건함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극장 속에서 길을 잃고, 그리고 또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지만, 그들이 가는 곳에서 혹은 그들이 멈춰선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용문객잔>의 상영이 끝나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텅 빈 객석을 비추는 순간은 이러한 ‘유랑’이 어느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찾아오는 것임을, 그래서 연이어 찾아오게 되는 공허감을 준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안녕, 용문객잔>에 이르러, <용문객잔>이라는 영화와 ‘복화극장’이라는 공간은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하나의 세계로 재설정된다. 그렇게 해서, 차이밍량은 한 편의 영화에 ‘안녕’이라는 인사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안녕, 용문객잔>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 중인 대만영화제를 통해서였다. 6월 22일까지 영화제의 일정이 잡혀 있다. 16편의 영화, 16개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