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이름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천황’은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각각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누구의 호칭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저마다 놓여있는 역사적인 맥락이 상이할 뿐만 아니라, 계급적인 위치도 다르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다. ‘차도르’는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여성 억압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경건함의 상징이기도 하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서구 중심의 근대화에 저항하는 전통의 보호라는 맥락을 지니기도 한다. ‘페르세폴리스’는 과거의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파르사’를 그리스인들이 불렀던 호칭이다. 아크로폴리스와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파르사’를 ‘파르사’라고 부르지 않고 ‘페르세폴리스’라고 불렀다. 이름 속에는, 한마디로 이미 이름을 부르는 자의 위치와 시선이 담겨 있다. 뱅상 파르노와 마르얀 사트라피가 함께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는 이름만 들어도 복잡할 것 같은 이란의 현대사를 소녀 마르얀의 시선을 통해 독해 가능한 텍스트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한 나라의 현대사를 넘어, 한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수렴된다. 당연히, 지극히 정치적인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한 것이니까.

소녀 마르얀이 놓인 위치는 복잡하다. 조부모는 왕족 출신이고, 부모님은 부유한 자유주의자들이다. 마르얀이 좋아하는 삼촌은 공산주의자이고 마르얀의 동네 친구는 비밀경찰의 아들이다. 1979년 이란의 회교도 혁명의 중심세력은 성직자, 자유주의 성향의 중산층, 급진주의자들의 연합이었다. 대부분의 혁명이 그렇듯, 한 혁명이 끝나면 혁명 세력 내부에서의 노선투쟁이 전개되고 이중 승리한 노선에 의해 한시적인, 혹은 장기간의 독재가 시작된다. 그리고 전쟁도 시작된다. 소녀 마르얀은 그 시대를 이란에서 보낸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과 아바를 좋아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소녀 마르얀이 이 시대를 살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할머니와 친척, 부모님의 영향으로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대드는 성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르얀의 부모는 마르얀을 유럽의 빈에 유학 보낸다. 이곳에서, 성장기의 마르얀은 적지 않은 방황을 겪게 된다. 전쟁과 혁명을 모두 경험한 마르얀과는 달리, 유럽의 젊은이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거나 열정에 탐닉하고 있다. 이들과 아슬아슬하게 약간은 위태롭게 친해지는 마르얀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곧 그에게 배신당한다. 마르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쟁과 혁명 모두에게 지지 않았던 마르얀이 사랑의 실패 앞에서 방황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르얀은 숙소의 주인과 싸우고 거리로 뛰쳐나와 노숙인 신세가 된다. 거리의 세월은 마르얀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진시키고, 결국 마르얀은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을 받고 이란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장악 당했다.

punk is not ded

  

마르얀이 놓인 상황은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혼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인 상황은 마르얀을 분노하게도 만들고 우울하게도 만든다. 사랑은 마르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존경하는 사람은 감옥에서 죽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진다. 이 모든 일들이 한 나라와 한 개인에게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문득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들을 둘러싼 겹겹한 나이테 속에서, 이들은 방황하고 길을 잃어 버린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지루하고 불안정한 혼란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이 터지고 한 사건이 마무리되면 다른 사건이 터진다.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만하게 만드는 것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한 번 씨익 웃어줄 수 있는 유머가 삶을 관조하게 만들고 역사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르얀의 할머니는 마르얀이 혼란을 느낄 때마다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이혼 앞에 주저하는 마르얀에겐, “이혼이란 것을 난 55년 전에 했지.”라고 말해주고, 차도르를 뒤집어쓴 마르얀에겐 “그것 좀 벗어버려라, 답답해서 볼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가슴을 탱탱하게 유지하는 비법은 “얼음 그릇을 가슴에 올려놓고 자는 것”이라고 상냥하게 일러준다. 마르얀의 할머니가 마르얀에게 언제나 강조하고 요구하는 것이 있다. 당당하라, 그리고 정직하라. 너의 본질을 잊지 말아라. 혼란과 무기력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당당함과 정직함, 그리고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탐색은 언제나 안내자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과하며 마르얀은 자유를 배우고, 떠남을 배운다. 마르얀은 다시는 이란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안고, 가족을 떠나 유럽으로 향한다.

<페르세폴리스>는 기술적으로 매우 세련된 애니메이션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고 단순하면서 울림이 있는 그림을 보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세상이 복잡하고 짜증나는 사람들은, 유머와 명료함을 일구어내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