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옥상의 망루에 한 부부가 있다. 부부는 자신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의 산동네로 들어와 살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그들은 산동네에서조차 재개발로 철거민 신세가 됐다.
망루의 고립과 소외 속에서 밤을 지새우던 부부는 한 가지 유희를 생각해낸다. 사회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자를 하나씩 꺼내오고, 가상의 존재를 맞이하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첫 등장인물인 건물주, 강남의 복부인에게 부부는 아첨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롱을 한다. 이윽고 술 취한 채 등장한 경찰청장에게는 노골적인 성희롱을 연출한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경찰청장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또 놀리기도 하면서 가상의 유희를 즐긴다.
망루 밖에서는 경찰 사이렌 소리, 물대포, 워키토키 소리가 들린다. 이들 부부는 의자를 계속 내오면서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커피도 팔고, 팜플렛을 팔기도 한다.
가상의 유희 속에서 드디어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말을 하고 싶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엉켜있기 때문에 도무지 전달이 안 된다. 부부는 점점 광적으로 변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그들 부부의 아들인 대변인이 나타난다. 온 몸에 화상과 상처를 입은 채로 말이다. 부부는 절망해 창문 밖으로 투신하고 만다. 대변인인 아들은 말을 못하고, 외마디 절규만 외쳐댄다. 결국 부부의 뜻이 전해지지 못한 채 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 '용산, 의자들'은 시종일관 불편함으로 관객을 괴롭힌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우리네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외면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현실. 이것은 연극이지만 연극이 아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250일이 훌쩍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아직 차디찬 냉동고에 들어가 있다.
연극 ‘용산, 의자들’에는 희생자들의 소외와 사회를 향한 외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용산, 의자들’은 지난 3월, 현대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인 이오네스코의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제에 올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신랄하게 풍자해 부조리극의 진면모를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
원작인 이오네스코의 작품을 그대로 공연할 경우 다소 난해한 형식과 프랑스적 배경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 시점으로 번안했다. ‘용산, 의자들’의 연출가 기국서는 “‘의자들’의 작품 분석을 하다가 문득 용산참사의 사건과 현장이 떠올랐다. 고립과 소외의 장소로 용산의 망루를 떠올린 것”이라고 기획의 배경을 말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고향을 떠나 서울의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가지만 재개발로 그곳에서조차 퇴출되고, 상가건물을 임대해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꿈. 연극은 그네들의 삶을 그린다. 용산참사 사건이 작품의 번안에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연극은 인간의 회한과 그리움, 사회에 대한 통찰이 투영돼있다. 작품은 소외와 고립에 대한 인간성의 통찰을 그린다. 놀이를 통한 웃음은 점차 절망적 현실과 마주치면서 어두움이 된다.
분명한 것은 아직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극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방관하는 것도 방조죄가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용산, 의자들'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용산, 의자들’은 2009년 9월 4일부터 시작해 10월 11일까지 대학로 창조아트홀에서 한다.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 30분·7시 30분, 일요일 오후 5시(월요일은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