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가 깃든 공연, ‘Hi Mr. Memory'

LP <버드 앤 디즈>(Bird and Diz)의 연주 멤버는 신기한 인물들의 집단이다. 디지 길레스피와 베이스의 칼리 러셀 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프로듀서인 노먼 그란츠가 드러머인 버디 리치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버드(파커)는 일거리가 없는 셀로니우스 몽크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각 통일성 없는 퀸텟(Quintet)이 구성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中

당대 한창 상종가를 구사하던 딕실랜드 재즈에 위 글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모였고 그 자리에서 저마다의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연주를 하면서도 각자의 머릿속엔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그러면서 ‘에이 난 내 길을 가련다’라는 생각으로 각자의 스타일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마치 연주가 진행되려면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는 식의 연주가 완전히 새로운 재즈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현대 모던재즈의 효시가 된 ‘비밥’(bebop)의 시작이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홍대 R클럽에서 있었던 ‘Hi Mr. Memory'의 공연을 보면서 ’비밥‘이 떠올랐다. 원맨밴드라서 기껏해야 드럼, 베이스 정도의 세션만 갖춘 단출한 무대를 예상했었다. 자칫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도 됐었다. 생각보다 많이 찾아온 관객들 앞에 ’Hi Mr. Memory'가 나타나자 이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드럼, 베이스는 물론이요, 무려 3대의 일렉 기타와 퍼커션, 첼로,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 R클럽의 작지 않은 무대가 비좁아 보일 정도로 풍성한 세션이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세션은 무리 없이 훌륭한 호흡을 선사했다. 앨범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느낌이 바로 ‘비밥’이 떠올랐던 이유였다.

인터뷰에서 ‘Hi Mr. Memory'는 세션더러 세션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력자‘라고 했다. 원래 공연은 필자의 우려대로 ’Hi Mr. Memory' 혼자 통기타 하나 둘러맨 소박한 포크 사운드 공연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계속 되면서 ‘조력자’들이 하나씩 참견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엔 퍼커션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첼로가 은은히 깔리면 좋을 것 같아요.” ‘조력자’들의 불만은 ‘조력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공연 뒤풀이에서 맺어진 혹은 이어진 인연이 공연이 거듭될수록 무대에 그대로 덧씌워졌다. 마치 빌리 코건이 기타 사운드를 레코딩 하면서 기타 소리를 수백 번 덧씌우는 것처럼. 그렇게 ‘Hi Mr. Memory'의 공연 사운드는 풍성해져갔다. 이 점이 ’비밥‘과 ’Hi Mr. Memory‘ 공연의 공통분모다. 물론 ’비밥‘은 ’서로 방해하듯이‘였고, ’Hi Mr. Memory' 공연은 ‘서로 조력하듯이’라는 차이는 있었지만. (참여 아티스트는 방송 다시듣기에서 ‘Hi Mr. Memory'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I Mr. Memory

그래선지 공연 내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배우 유지태 혹은 가수 한경일을 닮은 듯한 ‘Hi Mr. Memory'의 편안한 외모와 얼핏 윤도현을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보고 들을수록 아티스트라면 지닐 법한 사람과의 소통을 극도로 꺼리는 ’어둠의 힘‘보단 과연 이 많은 세션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킬 만한 인간적인 매력이 여기에 있었구나, 라고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참여 뮤지션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튀어나온 ’Hi Mr. Memory'와 친하다는 시인, 그리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기어코 일어서서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골수팬의 모습은 그의 인덕을 방증했다. 여기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트레이트한 모던 포크 사운드도 그의 인덕에서 비롯됐다면 다소 비약일까. 하지만 전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Hi Mr. Memory'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에 중학교부터 개천에서 같이 음악 하던 형이 제대 후 음악을 해보자고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Hi Mr. Memory'는 중학교 때 음악할 때도 ‘사람’과 함께 했고, 음악을 시작할 때도 ‘사람’과 함께 한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Hi Mr. Memory'는 계속 ’사람들‘과 음악을 연주하고 만들어나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일지라도 음악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Hi Mr. Memory'의 공연을 보면서 새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