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음악’이 ‘착한 음악’을 구축한다 - 네스티요나

뮤직르포 임경진PD

김민종이 <착한 사랑>을 불렀던 1998년만 하더라도 ‘착한 사람’이 대접 받는 시대였다. 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7년인 지금, ‘착하다’라는 표현만큼 매력 없고, 재미없고, 무능한데다 하품 나는 지겨움을 뜻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진담인 양 제 스스로 나쁜 남자라 부르는 시인 강정은 <나쁜 취향>이라는 대단히 재밌는 책을 썼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나쁜 교육>이라는 훌륭한 영화를 찍었다. 당장 서점만 나가보아도 ‘나쁜’이라는 형용사가 얼마나 좋은 의미로 쓰이는지 알 수 있다. <나쁜 여자 보고서>, <나쁜 강의>, <나쁜 아이로 키워라>. 바야흐로 ‘나쁜 것’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엄연히 ‘나쁜’은 영어로 하면 ‘BAD'다. ’BAD'는 표현상 절대 좋게 쓰일 수 없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You are bad'라고 말해보라. 대답대신 멱살을 잡을 것이다. ’Bad'에는 ‘무가치한’, ‘조악한’, ‘해로운’, ‘맛이 간’ 등속의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나쁜‘은 영어에서 ’Bad'의 개념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의 <나쁜 남자>가 ‘병든 남자’는 아닐 테니. 그렇다면 어떤 영단어가 ‘나쁜’에 적확할까.

필자는 <뮤직르포>팀이 지난 24일 취재한 밴드 ‘네스티요나’에서 그 힌트를 얻었다. ‘네스티요나’는 ‘네스티(Nasty)'와 밴드의 리더 ’요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Nasty'를 네*버님께 물어보면 ‘더러운’, ‘역겨운’, ‘간악한’, ‘음란한’이라고 대답해준다. 그렇다면 ‘네스티요나’의 '네스티' 역시 비슷한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어이, 이봐, ‘Bad'와 ’Nasty'가 도대체 뭐가 다르단 거야. 라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확실히 다르다. 섹시하고, 발칙하다고 해야 할까. 더럽고 음란하고 간악하다고 자처할 정도니. 사람의 시선을 끄는 팜므 파탈적인 매력, 아니 ‘마력(魔力)’이 ‘Nasty'의 의미일 것이다. 이것이 ’착한‘의 반대편에 서서 ’착한‘을 한없이 매력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끌리는 ’나쁜‘이다. 아직도 모르겠다고? ’네스티요나‘의 음악이 필자의 이런 조악한 설명 대신 음악으로 그 차이를 말해준다.

사진제공 SOUL PART

‘네스티요나’의 음악은 분명 ‘착한 음악’은 아니다. 난해하다면 난해하고, 프로그레시브하다면 프로그레시브하다. 비교할 만한 뮤지션도 찾기 힘들고, 밴드 본인들도 다른 밴드와의 비교를 일절 거부한다. 뭐라 딱히 정의내리기 힘든 음악. 정말 나쁘다. 직접 듣지 않고,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네스티요나’를 정확히 전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혹자는 ‘사랑스러운 사이키델릭(Lovely Psychedelic)', ’보랏빛 록(Purple)'이라고 하지만 과연 ‘네스티요나’에게 딱 맞는 장르일까. 결국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들을 도리밖에.

(사진왼쪽부터) 베이스 태혁, 드럼 용진, 보컬/키보드 요나

요나..눈빛 역시 공연장에서 확인해보실까요

‘네스티요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하는 ‘요나’의 눈빛이다. 키보드를 현란하게 연주하면서 정작 눈은 건반이 아닌 관객 하나하나를 응시한다. 공연마다 관객 전부와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한다는 ‘요나’의 말처럼 관객은 공연 내내 한번쯤 그녀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 순간 ‘네스티요나’의 마력에 빠진다. 세련되게 커버된 중세 음악 분위기(이것도 정확한 느낌이라고 할 순 없지만)의 키보드 라인과 ‘요나’의 뇌세적인 보컬은 ‘네스티요나’ 음악의 바탕이 되고, 그 위에 강력한 드럼 비트가 올려지고 묵직한 베이스가 그 모든 것을 감싼다. 이들의 연주는 무서울 정도로 거침없다.

‘네스티요나’는 자신들의 EP앨범을 홈레코딩, 셀프 프로듀싱할 정도로 튼튼한 연주 실력을 갖췄다. 2002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서 ‘숨은 고수’로 대중 앞에 섰고, 이후 인디씬에서 주목받고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아 왔다. 오는 4월 9일, 그들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데뷔 이후 5년 만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들은 정규앨범은 EP앨범과는 다른, 더 진보된 ‘네스티요나’의 사운드를 들려줄 것이라고 한다. 앨범 제목은 <아홉 가지 기분>.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무수한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과연 ‘네스티요나’의 음악을 아홉 개의 단어 혹은 기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홉 가지’도 부족할지 모른다. 역시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