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을 품고 까불다, 밴드 Nevada#51
뮤직르포 김 여 진


하늘이 파랗다. 손에 들린 앨범도 파랑색. 신나는 곡들을 한 판 돌려듣고 나니 마음도 새파래진 느낌이다. 나도 하늘 한 가득 오선지를 그려 넣고, 콩나물꼬리들을 멋대로 붙여가며 콧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지는 오후. 까불까불 스머프 걸음으로 즐거이 땅을 딛으며, 몇 년 전 전해 들은 일본의 어느 음악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집 앞마당을 파놓고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불규칙하게 묻어놓았다. 그리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만 하면 뛸 듯이 좋아하며 정갈하게 차를 준비한 후 마루에 나가 앉는다.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흐뭇하게 마당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는 빗소리를 감상하고 있다. 그의 앞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그저 흙마당에 부딪히는 후두둑 후두둑이 아니다. 빗물이 미리 묻어 두었던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를 빗물이 때리며 틱, 톡, 툭, 땡! 틱띠리딩딩 당당당당... 제 멋대로 사십만 육천 가지의 소리와 리듬을 자아내가 시작한다. 강단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음악평론가 김진묵 씨는 ‘까보니즘’ 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음악은 정형화 된 악보대로 연주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각종 리듬과 음정들이 까불어대는 소리의 향연이라는 본인의 생각을 한 단어로 멋지게 정리한 것이다.

지난 10월 R 공연장에서 있었던 밴드 Nevada#51의 단독 공연 “꼭 보고 싶습니다”에서도 이 ‘까보니즘’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공연은 멤버들의 군 입대로 생긴 2년간의 공백을 깨며 복귀를 알리는 떨리는 이벤트였다. 복무기간 동안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가득한 에너지를 못 다 내뿜고 참아왔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무대는 Nevada#51이 오히려 파워업 되어 돌아왔음을 힘차게 알렸다. 그것은 피나는 연습의 결과나 치밀한 기획의 소산이라기보다는, 무대에서 마음껏 까불어보고 싶었던 멤버들의 가열 찬 승리였다.

김진묵 씨가 까보니즘을 발견하는 지점은 음악적 이미지와 키, 템포만 주어지면 즉흥적으로 그에 맞추어 곡을 만들어내는, 그런 달관한 연주자의 모습에서인 경우가 많다. Nevada#51은 물론 그런 뮤지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까보니즘을 찾아낼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멋대로 까불거리고 있는 음표들을 잡아넣는 자유분방함에 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내면화 해 왔던 음악의 모습을 (사물놀이의 흥겨움이랄지, 힙합뮤직의 원초적 리듬이랄지 하는 다양한 것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나게 재표현 해내는 네바다#51의 곡과 무대가 시청각적인 까보니즘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2년간의 군 생활이 몸과 마음은 조금 얼렸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던 음악적인 감각마저 붙들어 맬 수는 없었나보다.
무엇보다 문화 컨텐츠 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야심 찬 다짐이 이 까불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실 홍대 앞에는 많은 인디밴드들이 이미 심상치 않은 수준으로 까불어대고 있고, 그래서 리스너들은 신이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까불고 우리는 즐겁고 밤이 깊으면 그걸로 땡. 그렇게 몇몇 클럽들에서 흘러나와 흔들거리는 콩나물꼬리들 속에서 밤을 보내고 하는 시간도 물론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 형성된 공감들이 모여 좀 더 큰 하나의 덩어리, 혹은 굵은 한 줄기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홍대 씬, 나아가 국내 음악계에 즐겁고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국내 음악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만연한 요즘 같은 때에, 이 같은 줄기를 만들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젊은 밴드가 있다는 사실은 참 고무적이다. 큰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쪼록 Nevada#51 네 청년이 만들어 내고 연주해내는 멜로디와 리듬들이 일본 어느 앞마당에 까불거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경쾌하게 두드리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가볍게 두드리던 빗방울들이 빗물 줄기가 되어 국내 음악계를 시원하게 적시게 되는 그 날까지, 그들의 바람대로 네바다#51만의 독특한 문화가 좀 더 큰 파도를 일으키는 그 날까지, 단독 공연 했던 날 저녁의 새파랗고 싱싱한 다짐을 잊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