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되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든 이 도시에서 깔끔 떠느라 분주한 사람들. 딥 클렌징 오일에 딸기향 바디샴푸와 스크럽, 그리고 매일매일 벗겨 내던져지는 수많은 속옷들. 하교 혹은 퇴근 후, 내 몸에 딱 맞는 수온을 위해 수도꼭지를 절대각도로 맞추어 놓고 샤워를 시작하면 하루의 모든 피로가 싹 씻겨 가는 듯한데... 그래도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저 깊은 곳 무언가들까지 시원하게 없어질 리가 없지.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 속에 일과의 찌꺼기는 머릿속, 마음속 구석구석에 쌓여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청소법을 잘 알지 못해 그저 참고 견딘다. 어리석다. 머리와 마음도 몸만큼이나 충분히 자주 씻겨주고 바람 쐬어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다.

왼쪽부터 전태병씨(G), J.BOB(D), 이영택씨(B), 김재국씨(V).

시트콤으로 먼저 인기를 끌었던 <올드미스다이어리>의 극장 판에서 김영옥 할머니는 이렇게 외치셨다. “빤스 한 장 갈아입었을 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날아 갈 것 같냐?” 지난 4월 1일에 사운드홀릭에서 있었던 ‘놀아야 하는 공연’ 마지막 무대에서 뛰어다니던 T.A.COPY를 보며 나는 내 머리 속 빤스를 갈아입었다. 김영옥 할머니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달리고 달리고 내달리는 밝은 펑크 사운드 속에 관객들은 저 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우울과 두통을 유발하는 찌꺼기들을, 그 오래된 빤스를 모두 내던져 버렸다. 던져진 찌꺼기들은 다시 김재국 씨(보컬)의 일갈에 찢겨, 전태병(기타), 이영택(베이스) 씨의 줄소리에 눌려, J.BOB(드럼)의 북소리에 뭉개져 자취를 감추었고, 무대 위아래 할 것 없이 즐거운 비명과 땀 냄새만이 남아 흥분을 더할 뿐이었다.

T.A.COPY가 이렇게 관객들과 소통하며 공연을 해온지도 벌써 햇수로 10년, 횟수로는 1000여 번 이상. 펑크가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음악이라고 입을 모으는 멤버들에게서 느낀 장르를 향한 애정과 자신감은, 저 엄청난 숫자들을 정당화 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올드미스다이어리> 영화에서 예지원이 분한 미자는 노처녀라는 이유만으로 기죽이고 살 것을 은근히 강요받지만, 절대 자존심을 굽히는 법이 없다. 한국에서 펑크 음악을 한다는 사실도 노처녀라는 타이틀만큼이나 괜한 오해와 선입견을 사기 쉽지만, T.A.COPY 역시 미자처럼 다소 뻔뻔하다 싶을 정도의 굳은 심지와 일에 대한 프로다움으로 10년을 무대에 서 왔다. 또 미자가 지PD앞에서만은 완벽한 여자로 보이고 싶어 부단한 노력을 했듯이, 몇 안 된다 하더라도 관객을 애인삼아 그 앞에서만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노래하고 연주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자주 들리는 SS501의 “제 애인은 팬여러분들이에요~”는 코웃음으로 넘길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시 이런 밴드의 노력에 부응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도 너무 부족해서, 김재국 씨의 ‘음악인들이, 아니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의사들처럼 파업을 한다면 대중들은 어떻게 나올까,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과연 우리가 의사들보다 못한 존재일까요?’ 하는 반문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원래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것일수록 그 존재가 흔하고 당연해져서 무심해지기 쉽다지만, 이런 것에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신경 쓰는 것이 또한 마땅한 이치인 것이다. 김영옥 할머니의 빤스 대사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몸은 깨끗하지만 마음 속 빤스 하나를 갈아입지 못해 하루 종일, 혹은 인생 내내 찌뿌둥하고 재미없이 시간을 버리고 있는 사람들. 여러분의 묵은 속을 색동, 망사로 화끈하게 갈아 줄 시원한 밴드 T.A.COPY를 찾아가보자. 새 걸로 누가 바꿔주기를 가만히 기다리지만 말고, 공연장으로 달려와 직접 골라 입어 보시는 것이 어떨런지? 이 분들, 그걸 낙으로 삼아, 또 힘으로 삼아 오늘도 여러분 입혀드릴 새롭고 신나는 속옷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으시니까. T.A.COPY의 올드펑크 다이어리가 계속될 수 있도록.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