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와 함께 라만차의 풍차로!
뮤직르포 김 여 진

1605년, 에스파냐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나이 돈키호테가 태어났다.
2004년, 아이다호에서는 누구보다 무심한 심장을 가진 사나이 Napoleon Dynamite가 태어났다.
2007년, 서울에서는 누구보다 신나게 뛰는 심장을 가진 밴드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가 탄생했다.
그리고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말했다. 현실은 진실의 가장 큰 적이라고.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나폴레옹은 그저 ‘죽지 못해 살지’ 라는 표정으로 두 시간 내내 일관하고 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못생긴데다 고집도 세고, 심지어 바지를 배꼽 위까지 올려 입고 다니는 패션 테러리스트인 그를 좋아하게 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14일, Q 공연장에서 만난 밴드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이하 ‘나다’)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이름을 따오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서 관찰해 보아도 그들에게서 영화 속 나폴레옹과 비슷한 점은 찾아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고 유창하게 인터뷰에 참여해 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그와 굉장히 상반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멤버들도 영화 속 캐릭터와 자신들이 닮은 점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하며 쐐기를 박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공연 시간.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 라인 위에 입혀진 발랄한 가사와 레트로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로시난테의 등 위에서 딸가닥거리는 발굽소리를 엉덩이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안장에서 잠시 내려 와 영화 속 나폴레옹처럼 말도 안 되는 춤을 추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딘가 조금 채워지지 않은 듯하게 들려오는 사운드는 보컬 나폴레옹의 신나는 추임새와 몸짓으로 보충이 된다. 이렇게 매사 신나고 쾌활하며 의욕이 넘치는 멤버들이, 어쩌다 저런 영화 이름 아래 뭉치게 되었을까? 공연을 보고 나니 더 갸우뚱해져서 심리 분석을 해 보기로 했다. 분석의 시작은 다시 돈키호테와 영화 이야기부터다.

영화 속에서는 나폴레옹이 돈키호테를 읽는 장면이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허무하면서도 저돌적인 그의 행동과, 깡마른 중세 기사 스케치를 보며 빤히 상상할 수 있다. 입을 헤-벌린 채, 돈키호테가 벌판을 누비는 챕터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돈키호테의 용기와,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밉지 않은 고집은 뿌리를 한 데 두고 있었다. 자아에 대한 순수하고 절대적인 믿음. 그것이 그들의 힘이다. 그들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바보스러울 만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이목 따위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정확하게는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나다와 인터뷰를 하고 공연을 관람하면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음악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야심 차고도 다소 엉뚱한 그들의 외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MBC 대학가요제라는 큰 무대를 밟고 나서도 여전히 좋아하는 것, 생각만 해도 즐거운 꿈을 위해, 작은 공연장과 전국의 무대를 돌아다니며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모습이 저 두 인물과 굉장히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심장, 현실에 대해 무심한 심장, 신나게 뛰는 심장 셋 모두, 사실은 ‘순수한 믿음’이라는 같은 피를 담았다가 뿜어대는 펌프였던 것이다. 덧붙여, 돈키호테와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이미지가, 열정이라면 세계 최고이지만 그 만큼의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는 한국 인디밴드의 정체성과도 은근히 맞물렸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꿈 속 에서만 살아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기분 좋을 만큼 적당히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조금씩이나마 우리 마음 속 깊이 있는 진실로의 문을 열어주는 그런 소설, 그런 영화, 그런 음악들 - 이 셋을 한 리뷰에서 한꺼번에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 은 분명 너무나 큰 보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라만차의 풍차이든, 전어축제이든, 다슬기 축제이든, 음악을 로시난테 삼아 즐겁게 타닥타닥 달려가는 밴드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음악으로 세상을 정복해 보겠다는 야심꾸러기 멤버들의 천진함에 기꺼이 속아주고 싶다. 여러분도 공연장에서 함께 속아보는 것이 어떨지? 그들의 편력은 전국 투어로 계속 될 것이라고 하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오니까.

마지막으로 기사 돈키호테의 명언을 인용하며 마친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운명은 바야흐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으니... 자, 산초여, 저 쪽을...

관악구민이여, 음악소리 흥겨운 저 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