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를, 사람들이 가장 솔직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공포영화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을 공포로 몰아가는 그 사건 배후에, 사건보다 더 공포스럽고 잔혹한 이유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절망으로 내몰고 잔혹한 행위로 안내하는 사회적인 정황과 인물의 슬픈 연대기는, 단지 잔인한 퍼포먼스나 깜짝쇼로 끝날 수 있는 공포 영화에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감정, 즉 드라마를 불어 넣는다. (물론 훌륭한 공포영화 중엔 일체의 이유나 정황을 제거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히치콕의 <새>)

이러한 측면에서 ‘복수’라는 터전은 공포영화가 매력을 느낄 법한 장소이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에겐 그만한 사연이 있고, 이 사연은 복수의 방법을 정당화해준다. 관객은 감독의 안내에 따라 복수를 하려는 자나 복수를 당하는 자 중 한 명의 시점을 선택해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복수가 무서운 것은, 결국 '복수'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이다. 복수를 결심한 자는 대개 복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므로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존재론적인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복수를 완성한다 하더라도, '복수했다'는 사실만 남을 뿐, 복수자는 자신이 걸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짐을 망연히 바라보아야 한다. 즉 복수는 역설의 장소이며 허무의 계단이다. 진정한 복수의 쾌감은 복수를 준비하는 동안에 국한된다. 복수가 끝나는 순간, 복수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빈 장소에 서게 된다.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복수는, 아마도 피복수자에게 '복수당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어느 시점에서 종료되는 복수를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복수가 공포영화와 만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복수'가 공포영화의 주된 원천이 되는 것은, 이러한 상식적인 수준의 복수를 넘어서는 것들, 즉 복수에서 더 나아가는 무엇이 사건을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미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자, 혹은 모든 것을 잃은 자는 마지막으로 자기를 잃기 위해 비주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잔혹함과 그로테스크함, 그리고 슬픔-을 짊어지고 실행한다.

공포 영화의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나왔는지 모를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러므로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성했거나 편집증적이거나 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혼령이다. 단순한 복수영화의 주인공들이 내밀한 상처와 치밀한 이성을 지닌 것과는 대조적이다.



굳이 이러한 방식으로 복수영화와 공포영화를 구분한다면, <스승의 은혜>는 복수영화와 공포영화의 어중간한 사이에서 이른바 '공포휴먼'이 되었는데, 개념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무척이나 슬픈 영화이기 때문이다. 즉 슬픔 속에서 공포를 발굴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세상의 슬픔들은 무천 단순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숙명적인 전후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본다면, 세상은 너무 많은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힌 여러 다발들의 매듭에 가깝다. 영화가 슬퍼지는 것은, 영화에서 복수를 결심한 주인공이 이 세상의 매듭을 인식하고 풀어가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건들을 서술하자면 이렇다. 선생님의 남편은 고엽제에 중독되어 있고, 산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온 아이는 기형아이다. 미자의 어머니는 가난하고, 미자의 친구들은 철이 없었고 선생님은 부주의했으며 미자의 어머니는 재수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선생님'은 어린 미자가 보기에 모든 비극의 '원흉'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세상은 미자가 지독히도 운이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상처란 상처는 선생님에게 몰려있다. 남편은 자살하고 아이는 실종되었으며 말년에 몸까지 아프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과 근본적인 원인을 나누어 생각한다면, 선생님은 미자 어머니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자에게 선생님을 사건의 원흉으로 인식시킨 것은 객관화된 사실이 아니라, 스승과 학생이라는 관계가 낳는 특별함이다. 부모와 함께 아이들 돌보아야 할 스승이 그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스승은 무심하였고 그녀 또한 삶이 버거운 것을.

많은 세상의 일들이 그러하듯 미친듯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는 경우, 그것이 불분명한 원한과 증오의 정념에 근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의 말미에 미자가 선생님을 상대로 울며 호소하는 것은, 물론 영화적으로 묘사된 것은 슬픈 사연이지만 미자의 생이 무척이나 난감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생은 어머니가 죽어버린 순간에서 멈춰버리고 그녀는 복수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지독한 무기력을 말이다. 그녀의 시나리오 속에서 선생님을 증오해야 하는 아이들은 현실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대단히 자랑스럽게 살아온 아이들이다. 반면 미자는 어느 순간 어머니도 잃고 인생도 잃었다. 미자의 복수는 그 정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자신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 보상을 받고자 하는 소아적인 발상에 깊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자는 그 이름만큼이나 기구한 삶을 살아낸 것이다.

그러므로 미자는 복수의 화신이 되기보다는, 복수 이외에 할 것이 없는 불쌍한 인생이 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단지 미자를 찌질한 인생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미자를 보면 IMF초기에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했던 ‘생계형 범죄’가 떠오른다. 우리는 수많은 미자를 보아왔다. 이렇게 영화가 슬퍼지는 것은, 이 사회의 어떤 단면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삶의 도처에 산재해있는 슬픈 순간들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는 우리 혹은 미자의 처지는 언제나 비루했다. 작은 삶의 충격들에게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조건들 - 가난과 비교, 우위와 열등을 재단하는 사회 - 은 언제나 우리의 삶보다 더욱 강력했던 것이다. 미자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가진 것이라곤 맨몸뚱이 뿐'인 아이이다. 어머니는 돈이 없고 스승의 날에 남들처럼 선생님에게 선물을 사줄 정도의 처지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와 타인들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은 말로 뱉어지는 것보다 훨씬 슬픈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로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 미자가 삶의 어떤 순간 스스로 해석을 포기하고 주저앉았을 때, 누가 미자를 보호할 수 있었을까? 조금만 확대해보자면 이렇다.

우리 주위엔 이런 사람들이 많다. 평소보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월급이 약간만 깍이거나 가족중 누군가 한명이 살짝 아프기만해도 그 작은 충격들이 삶 전체를 좌우하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가 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주위에서 생계형 범죄를 그 사회 역사적 맥락을 거세하고 그저 ‘미친 놈’으로 인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미자가 슬픈 상황에서 그것을 '공포의 복수'로 몰아가는 것은 이성적이진 않지만 자연스럽다. 그녀에게 다른 길이 있으리라고 헤아려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줄곧 생각했다. 슬픈 영화로군. 상처를 해석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삶이 주저앉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저 살인의 순간들은 결국 자기 속에 안주하지 못하는 처지, 혹은 안주할 장소가 부재한 자기에 대한 분노가 선택한 퍼포먼스, 생의 확인을 위한 의식인 것이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조금 더 얘기를 하자면, 슬픔과 분노, 그것을 해석할 마음도 없고 인정할 의지도 없는 제도나 권력들은 그것이 크건 작건 공포영화보다 더욱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가 슬픔의 정념 속에서 '공포'를 발굴해낸 것처럼, 우리의 삶도 어느 순간 공포스러울 수 있다.

소위 '생계형 범죄'라는 것은 이 슬픈 시대에서 공포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징표 중 하나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 원한의 정념을 무차별적으로 사회에 난사하거나(범죄) 자신에게 투사하는 것(자살)은 이 시대가 딛고 서 있는 공포의 한 정형인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 사회에 착륙했던 그 시절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삶을 해석할 여유가 이윤에 의해 떠밀려나간 이 나라의 상황이 그저 슬프고 무서울 뿐이다.

영화에선 고엽제, 기형아, 소외, 무신경한 초등학교 교사.. 이 모든 것들이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어정쩡한 뒷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그렇다. 그래서 영화는 한정없이 슬퍼진다. 물론 공포영화 본질의 무서움과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편집과 음향이 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한계도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휴먼과 공포에서 어정쩡한 선택을 하고 결국 확정을 짓지 못해 관객들의 표정은 모호하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봐야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겐 <스승의 은혜>가 그랬다.



- 고대권 기자( 수요일 오전 11시 문화정거장 '고대권의 천기누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