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를 끝내고 다시 일터로 나와 묵직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일은 언제나 힘든 것 같다. 여기 저기서 휴가를 잘 보냈냐는 물음에 그냥 "고향에 내려가 그냥 조카랑 놀았어요.."라고 얼머부리는 것도 참 스스로 면구스러운 답변이 아니던가.(조카랑 놀아본 분들은 아시리. 3분만 즐겁습니다.) 그러던 중 내가 잊고 있었던 정말 알차게 보냈던 일이 하나 생각이 났다. 영화 '괴물'을 심야영화관에서 봤던 것을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영화관에 잘 가지 않아서 적어도 내겐 특별한 일임.)

한강시민공원에서 괴물이 사람들은 쫒는 영화장면. 이렇게 괴물은 우리 일상 가까이 있을지도..

휴가 기간 중 영화를 본 것이 생각날 때 쯤엔 누구도 내게 휴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잠시 점심식사를 한 후 담배를 피우며 그때 영화관을 떠올리며 영화 '괴물'에 대해서도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았다. 5년만에 다시 찾은 시골 영화관.(저는 고향이 시골입니다.) 삐걱대는 의자소리.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에도 어떤 꺼리낌 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밖에 대기하면서 상영관 안에서는 송강호가 '노 바이러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사가 다 들리는 내부 구조. 무척 불편하기 그지 없는 환경이었지만 나름 향수도 느끼고 운치도 있는 금요일 밤이었다. 요즘엔 최초 기자 시사회 때와 달리 이런저런 비판의 시각도 들리는 '괴물'이라는 영화지만 나름 봉테일이라는 닉 네임을 가진 감독의 연출력도 돋보였고,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들의 열연도 뛰어났던 것 같아서 만족했다.(배두나의 코가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불편한 영화관 여건이나 환경을 떠올리긴 했지만 정말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상황은 영화가 끝나고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바다이야기'라는 성인 오락장 앞에서 벌어졌다. 한 중년의 남자가 덩치 큰 젊은이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젊은이는 그 중년의 남자에게 윽박지르듯 인상을 쓰면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건너편 도로에서 둘의 대화를 엿들어 본 결과 대강 이 중년의 남자는 게임 비용을 가게 측에 빌린 듯 했고 이것이 결국 쌓이고 쌓여 채무관계가 많이 불어난 듯 했다. 바다이야기..황금장 등의 사행성 성인 오락장이 판을 치는 상황이라고는 했지만 정말 시골..아주 촌구석인 나의 고향에도 이런 마수가 뻗쳐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다. 아니 하기 싫었다.

횟집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성인 사행성 도박장 '바다이야기' 영화 속 괴물과 무척 닮아 있지는 않은지.

심기가 불편한 상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이어지는 듯 하다.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는 바다이야기, 황금성 따위의 상호를 가진 성인 오락장 이야기가 그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10개월 동안의 상품권 발행가액만 2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예산과 맞먹는 수치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분명 이는 돈 먹는 '괴물'임에 틀림없을터.(실제로 도박장의 게임기가 거의 매분마다 ‘끼익’ 소리를 내며 1만원권 지폐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소리는 영화에서 괴물이 내는 소리와 다를 바 없으리.) 이에 관련된 이런저런 정부 이권개입 의혹, 정책의 실패를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정책 만드는 사람들의 사행성 도박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국민이 이를 올바로 즐기고 접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대한 고민 등은 어디가서 쳐박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래놓고 인제와서 관련부처 장관이 재심의 어쩌고 하면서 해당 오락장을 퇴출시킨단다. 이 무슨 뒤늦게 외양간에 CCTV 설치하는 시츄에이션인지.

영화 '괴물' 초반 장면에서 자살을 하려는 한 남자가 강물 아래서 괴 물체를 보게 된다. 이를 보고 자기를 구하려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보지 못했다는 대답만을 듣는다. 자살을 결심한 남자는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강에 뛰어든다. 우리에게는 뻔히 보이는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정책입안하는 높으신 양반들에겐 왜 안보이는 걸까. 저 강물아래 괴물처럼 시커멓지도 않고 비교적 잘 보이는 문제점인데. 영화에 나온 '둔해빠진 새끼들'과는 달리 정책기획하는 분들이 나라 잡아먹는 괴물이 진짜 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단 걸 빨리 알아채길 바라면서 나의 휴가 후기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