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FM 방송국장의 격무를 덜어주기 위해 오늘 미디어 일일 교사로 투입이 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차이점을 통해 라디오라는 매체를 알리는 것이 교육의 주된 줄기였다. 라디오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는 나의 설명에 "라디오가 더 형이에요?" 라고 희권이(체험 어린이 중 최고령 9세)가 물었다. 매우 재치있는 질문에 이어지는 대답이 "근데 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더 많이 봐요?"라는 것이었다. 무척 당황했다.(스튜디오내에는 어머님들까지 계셨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체면을 끝까지 지켜야만 했다. X팔리면 안된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라디오를 더 많이 듣는데~"(임기응변 제로에 도전하는 대답이다.)라고 얼머부린 다음 교육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어찌어찌 하여 교육은 끝났지만 왠지 뒤가 편치 않았다.

교육이 끝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분명히 라디오가 티비보다 더 형인데....그렇다면 티비보다 뭔가 더 뛰어난 점도 있을텐데...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도 못하는 나는 왜 라디오 피디를 하고 있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무척 교과서적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매체 간의 우열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서로가 다를 뿐이고 그 매체만의 매력을 잘 살려야 한다' 는 등등이 해답이 될까. 뭔가 부족한 듯 하다. 분명히 티비가 갖지 못하는 뭔가 더 월등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티비가 저지르는 잘못을 라디오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계속 골똘히 생각했다.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

예전에 '티비가 양날의 劍이라면 라디오는 한 쪽 날만을 사용하는 刀에 가깝다.' 라고 누군가 쓴 글을 본 생각이 난다.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들을 준비한 티비에 비해 라디오는 화려하고 풍성한 맛은 떨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더 집중력 있고 수용자 개개인에 밀착성이 큰 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라디오DJ는 '여러분'이라는 말을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단다. 청취자 개인과 DJ간 일대일 대화의 상황을 연출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순간 또 생각이 난 것은 김청기 감독의 태권V 무적론이다. 이 분은 마징가Z가 태권V를 못 이기는 이유로 태권V에게는 인간성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징가Z와는 달리 태권V는 기본적으로 무술을 하는 로봇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계인 마징가Z가 인간이 하는 무술을 연마한 태권V를 이길리 만무하다는 것이다.(결국 기계를 창조한 것은 인간이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라디오에도 태권V가 갖고 있는 인간미가 많이 깃들여진 매체가 아닐까. 청취자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DJ가 마이크를 통해 대신 전달해주고 듣고 싶어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수 많은 타 매체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라디오만의 힘일 것이다. 또한 이런저런 요구만 하는 듯한 텔레비전과는 달리(일부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억지웃음을 강요하고, TV특종 놀라운 세상에서는 별 내용도 없는데 우리에게 특종을 강요하고 있고, 결정 맛대맛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음식의 소비만을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라디오는 비교적 편안함을 주는 매체라는 결론에서 역시 나름대로 미디어계의 맏형의 체면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라디오는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강한 내성을 가졌다는 사실로 라디오를 격려하고 새삼스레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본다.

마지막으로 희권이 생각이 났다. 이 친구가 검과 도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진 못할 것 같고...그럼 로보트 태권V인데...이 녀석이 태권V보다는 케로로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교육할 때 태권V 만화영화 부터 보여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면 희권이도 라디오를 사랑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