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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02/17 19:29:46  이봉화(진보신당 관악구정책연구소 소장)
[기고]월급 절반을 난방비에 쓰는 사람들…"에너지는 '기본권'이다"
관악구 '에너지 빈곤층' 실태 조사 진행해보니

* 이봉화(진보신당 관악구정책연구소 소장)
진보신당과 관악일터나눔지역자활센터는 지난 1월, '주택 단열 지원 프로그램'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저소득층 가정이 밀집해 있는 서울 관악구 중앙동의 한 주택에 단열과 창호 교체 공사를 실시했다.

 

집수리 시범 사업에 이어, 2월 초순에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실태 조사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한국전력공사에서 받은 '2009년 전기 요금 연체로 인한 전류제한장치 부착 가구' 명단을 토대로, 2월 2일부터 2월 6일까지 5일간 관악구 내 21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저소득층은 난방비 덜 쓴다'고? 문제는 부실한 주택!

 

실태 조사에서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방문 가구 수에 비해 성공률이 너무 저조했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3시간 동안 20여 가구를 방문했으나 단 한 가구도 조사를 할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낮 시간에 사람이 집에 없거나, 있더라도 조사에 응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태 조사 후반엔 관악구에서 사회 복지 관련 활동을 해온 지역 단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다 원활하게 실태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실태 조사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역 단체들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진행했더라면 훨씬 풍부하고 폭넓은 조사가 이뤄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사 결과, 동절기 난방 비용이 10~20만 원인 가구가 13가구(62퍼센트)였고, 10만 원 이하인 가구가 6가구(28퍼센트)였다. 이번에 함께 실태 조사를 진행한 은평구와 구로구의 사례를 합친 결과에서도 난방 비용을 10~20만 원 사용한 비율이 전체의 90퍼센트를 웃돌았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놓고 "10~20만 원 가구가 예상보다 많다", 혹은 "나도 그만큼은 쓰는데"라는 반응이 더러 있었다. 소득이 적다고 난방비나 수도 요금이 비례해서 줄어드는 게 아닌데도,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 역시 적을 것이라고 여기는 편견 때문이다.

 

소득이 적어도,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물의 기본적인 양이 있다. 그래서 에너지도 '기본권'이라는 개념으로 다뤄야하고, 이 기본권을 위해 이뤄져야 하는 조치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탱크에 막대기 넣어 기름 확인하는 할머니…에너지는 '기본권'이다

 

조사 결과, 난방 비용이 가구 소득의 10~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가 많았지만, 난방의 질은 무척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택의 상태가 노후하거나 무허가 건축물인 경우가 많아, 단열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실내의 냉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의 난방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다. 시멘트 블록 한 줄을 쌓고 바로 도배를 해놓은 벽체에 '에너지 효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또 관악구의 경우 무허가 주택 밀집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이 지역에는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고 있다. 도시가스를 이용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비싼 등유나 LPG가스 보일러를 사용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난방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관악구 삼성동의 무허가주택에 거주하는 황모 할머니는 난방 비용이 많이 들어, 수시로 기름 탱크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고 계셨다.

 

실태 조사를 하기 전, 생각했던 것보다 주민들의 주택 개선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는 않았다. 물론 희망하는 에너지 복지 정책을 묻는 질문에서 단열이나 창호 교체 등을 많이 꼽았지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거나 원하는 강도가 세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된 요인은 조사가구의 대부분이 임차 주택이기 때문이다. 집수리를 해서 주거 상태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수록 집의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이사를 가야할 확률이 높아지는 우려 때문이다.

 

에너지 기본권, 지역 사회부터 논의 시작해야

 

이번 실태 조사를 통해, 에너지 기본권 향상을 위해 향후 해야할 과제들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었다. 먼저, '에너지 문제를 포함한 주거 복지'를 주제로 지역의 연대 활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관악구에는 1990년대 철거민 투쟁의 성과로 결성돼 지금까지 주민 운동을 해오는 단체도 있고, 사회 복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며 푸드뱅크 사업으로 지역 내 빈곤층과 긴밀히 소통하는 단체들도 있다. '자활 사업'으로 집수리를 10년 넘게 해온 지역자활센터도 있는데, 이들과 함께 주거 복지에 대한 실태 조사를 보다 광범위하게 진행해 이를 데이터화할 필요가 있다.

 

관악구청의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 실적을 보면, 2008년 110가구, 2009년 52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이 중 '관악일터나눔지역자활센터'에서 집수리를 실시한 가구는 각각 6가구(5.4퍼센트), 25가구(4.8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기 매트 지급과 같은 주거 현물 급여 방식으로 이루어져 실적 위주의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의 주거 실태가 정확히 파악된다면, 필요한 집수리가 한 번에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서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무허가 주택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단열을 기대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반적으로 주거 조건이 열악하지만, 임차인, 임대인 양측 모두 집수리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지금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 앞선다.

 

'에너지 빈곤층' 개념조차도 없는 '부실한' 정부 대책

 

둘째로, '에너지 빈곤'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좀 더 실증적인 조사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에너지 빈곤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소득의 10퍼센트 이상을 난방·광열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이를 정의하고 있지만, 이는 영국의 기준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적정 에너지 이용 기준'도 없을뿐더러, 기준 소득에 대한 규정 또한 없다. 에너지 빈곤층의 기준을 '소득 10퍼센트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정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상태다.

 

지난 9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에서 주최한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제안된 '전기 요금 연체로 인한 전류제한장치 부착 경험 가구'(약 11만 가구)을 기준으로 '에너지 기본권의 최빈층'을 삼는 것 역시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류제한장치 부착 기간이 0~5일 사이인 가구의 경우, 빈곤 외의 요인으로 전기 요금 장기 체납이 이뤄진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구 중에는 원룸 밀집 지역이 상당이 많았고, 그들 대부분이 전류제한장치를 단기간 부착했다.

 

관악구에서 원룸 거주가 가능한 경제력(전세 보증금 5000~6000만 원 또는 그에 상당하는 월세 부담 능력)을 가늠해 봤을 때, 요금 납부를 미루거나 잊어버려서 장기 체납하게 된 경우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들어 몇 가구를 조사해 봤는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 임차인에 대한 고려 필요해

 

셋째, 임차인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현재 지식경제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은 거주자의 신청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저소득층일수록 주택 거주자가 임차인인 경우가 많아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집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집수리가 가능하다. 집수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임차 기간이 종료한 후에는 이전보다 높은 임차료를 내야 하거나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에, 임차인 또한 집수리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주택 단열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집수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컨대 가전제품처럼 주택에도 에너지 효율 등급 표기를 의무화한다면, 임차인들은 에너지효율 등급이 높은 주택을 선호하게 될 것이고, 에너지 효율 등급이 낮은 주택 소유자는 임대차를 위해 집수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집수리 사업의 한계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현재의 집수리 사업은 다수의 초단기 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을 집주인의 의무로 규정한다면 집수리 수요는 현재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집수리 수요를 파악하고 연간 계획을 수립하여 관리한다면, 정기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주택 개선 통한 '기후 변화 완화' 효과, 장기적 관점에서 내다봐야

 

마지막으로, 주택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기후 변화 완화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에너지 소비 구조 전체를 바꾸는 것과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실태 조사를 진행하면서, 주택 단열이 제대로 이뤄지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난방 비용을 아끼기 위해 춥게 살고 있는 가구에 단열과 창호 교체 등으로 에너지 효율화가 이루어지면, 이들이 같은 비용으로 좀 더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질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소비가 효율화되는 것이지만, 수치적인 면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는 것으로 바로 확인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택 단열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해 나감에 있어 단기적인 수치적 성과에 따라 사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소비 구조 전체를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당장에 공공용, 서비스업, 산업용으로 소비되는 전력이 얼마나 많은가? 한강 다리마다 설치된 야간 조명만 꺼도 저소득층 가구에 얼마나 많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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